미리 실어둔 차에 몸까지 싣고 나니 그제야 긴장감이 풀렸다. 미리 준비해 둔 저녁거리를 차에서 꺼내어들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는데 질문 하나가 새어 나왔다.
"여보, 오늘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피곤해서 그래."
"오늘 별 다른 일 없었잖아...?!"
남편의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에, 언젠가 SNS에서
봤었던 릴스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골자는, 직업이 있는 남편이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를 두고
"집 사람은 집에 있으니깐요."라고 말하던 내용이었다.
그 집 남편의 모든 문장은, "집 사람은 지금 일을 쉬고 있으니깐요."로 끝이 났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7시간 동안의 나는 가끔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간혹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지만 일주일에 1번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인플루언서 찬스를 써, 협찬으로 좋고 비싼 경험을 하긴 하지만 가계 경제에 딱히 도움이 되는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
가끔 남편이 "둘이서 벌면 그래도 여유롭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엄마가 집에 있어서 아이들이 얻게 되는 안정감에 대한 자기 방어 카드를 꺼내어든다.
집에 있지만, 집에 자주 없는 사람.
전업주부이지만, 경제활동을 애매하게 하는 사람.
가끔 일할 기회가 생겨도 유치원이 허락하지 않는 시간 외에는 쌍둥이를 채 2시간도 맡길 곳이 없는 사람.
하원 후에 독박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10시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홀가분해지는 사람.
아이들을 재우며 피곤이 몰려들지만 육퇴 후 혼자 보내는 그 시간이 아까워 잠을 깨려 노력하는 사람.
하지만 나는 집에 있는 사람.
집에서 놀지 않지만 집에서 노는 사람.
"오늘 별 다른 일 없었잖아." 하는 남편에게 이 모든 걸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설명하는데 드는 공력조차 피로했고 육아와 집안일 외 친정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눈치가 보였으며 차 안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난 또 다른 명찰을 바꿔달고 분주해야 했으니.
사정이 이러해, 7시간 동안에도 이토록 부산스러울 일이지만 가끔 직장맘이라는 명찰을 힐끗거리게 되는 건 '집에 있는 엄마'이고 싶지 않아서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