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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때

1. 느린 움직임


이른 아침 서둘러 탄 기차 4호차 앞에서 줄을 섰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던 느린 보폭의 중년 남자분을 봤다. 100세 시대, 60대는 또 다르게, 무르익은 청춘일 테지만 그런 에너지는 보이지 않았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자동문 앞에서 잠시 손을 놓쳐 휘청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부축했다. 지극히 타인임에도, 익숙한 아빠의 뒷모습을 느꼈던 터라 습관적으로 반응했던 탓이다. 허벅지에, 근육이라곤 남아있지 않아 뼈에 최소한의 살로만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를 늘 불안해하던 마음이 앞섰던 탓이다. 주변에 그런 이가 없더라도, 설령 아는 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그랬을지 모를 일이지만 통로에서 좌석에까지 이르는 그 힘겨운 발걸음 하나하나를 좇게 된다. 둔한 움직임에, 서두르지 않게 된다. 올리는 짐이라도 들어들일까 싶어, 한참을 지켜보다 내 걸음을 옮겼다.





2. 휠체어 길


힐끗거리고 지나쳤던 장애인 석, 장애인 화장실, 휠체어 길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미리 동선을 살피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거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야!'말에, 매섭게 반응하게 될 줄 몰랐다. 다른 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휠체어에서 어렵게 내리고 힘겹게 오를 이동이 얼마나 번잡한 일인지. 이 단순한 행위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게 할 일인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겠다.  과도한 부축과 배려가 행여 마음을 다치게 할까 싶어 멀리까지 내다보고 미리 움직이며 최소한으로 손을 내민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 보폭의 식당 문인지, 오를 수 있을 경사의 길인지, 너비와 각도를 생각하는 때가 많아졌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무심함에 사과하며 모르는 누군가의 길고 긴 여정을 생각한다.




3. 무심코 던지는 질문들의 무례함


일상에서 안 보이던 이슈들을 새로이 들이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질문하지 않는다. 단어 하나하나 신중하게 된다. 그 사람 또는 그 가족의 일상에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을지 모를 내밀한 역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할까 조심스러워서이다. 모르는 사이 잠재워놨던 상처를 들추기 싫어서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들에, 무례함을 자주 느낀다. 지극한 사적인 영역에까지, 안부나 인사라는 포장으로 훅 들어가는 공격이 싫다.




티 안 나게 누군가를 관찰하는 때,

사적인 영역에 침범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질문에 막아서서, 수위를 낮추는 때,

내 말을 쏟아내기보다 천천히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말수는 없어지고 눈물은 많아졌다.

하지만 자주 웃으려 한다. 덩달아 지치거나, 에너지가 소진되어 닳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걷고 보고 부축할 에너지를 비축해 둔다. 그 와중에 지치지 않도록

과하게 노력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길, 여정일지 짐작이 안되서이다. 그럼에도 힘을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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