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브런치북' 글로, 재발행하였습니다.
치약 뚜껑을 잘 닫는지, 다 써가는 치약을 어떻게 쓰는지. 치약 그게 뭐라고. 부부싸움 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모델 장윤주 씨의 남편, 정승민 씨는 장윤주와의 연애 시절 "아내 집 화장실을 썼는데 화장실에 치약이 가위로 잘려 있더라. 그 안에 칫솔이 꽂혀있었다. 그걸 보면서 되게 검소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후 정승민 씨가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불 끄기', '물티슈 뚜껑 닫기', '보일러 끄기' 이런 거라고 토로했다.
누군가에게는 화장실 청소까지 다 마치고 나와도 15분 남짓. 누군가에게는 샤워기 물 맞고, 구강세정기 물도 맞고, 대변 후 비데 물까지 맞느라 60분 남짓 걸리는 샤워시간. 샤워시간을 놓고 치졸한 신경전을 벌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더 이상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걸 몰랐다. 바디 워시 향을 풍기며 이불속에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푹잠 열연을 펼치게 될 줄은. 우는 아이를 들쳐 엎고 남편의 샤워기 물 잠기는 소리를 기다리며 이글이글 분노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일 줄 몰랐다.
이른 아침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인지, 야밤과 새벽에 주로 활동하는 올빼미 형일지. 딱히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언제든, "잘 잤어?"로 굿모닝 인사가 마냥 반가울 때가 많았으니. 아이 열 보초를 설 땐 드르렁 코를 골며 곤히 단잠을 자던 사람이 "잘 잤어?" 하는 인사에 이토록 화가 날 줄은.
입는 옷 그대로 허물을 벗어놓던 흔적 속에서, 바지 안 팬티까지 건져 올리게 될 줄은 상상 못 했다.
제사를 지내는지 여부만 생각해 보다... 기꺼이 존중할 수 있을 가풍이라고 생각만 했었지. 제사 횟수와 준비해야 할 음식 가짓수, 5종 전을 탑처럼 높게 쌓는지 여부에 대해 깊이 고려한 적이 없었다. 생전 고인이 좋아하시던 음식들 위주로 간소화된 제사상을 허용하는지, 음식 하나하나 손수 만드는 정성을 담아 한 층, 한 층 높이높이 쌓아 올리는 기술까지 펼쳐야 할는지 말이다.
각자의 집에, 스스로 셀프 효도를 하는 타입 인지... 시댁이나 처가엔 딱 그 정도만, 형식적이면서 상대방의 가족에만 유독 진심일 런지 미리 재본 적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여태 친구들과의 바깥 시간을 소중해할는지, 지극히 개인의 자유와 취향을 중시할 사람 인지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 나와의 새벽시간까지 술 부림이, 결혼 후에도, 육아가 시작된 후에도, 이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 열린 결말을 고려한 바가 없었다.
직접 요리를 하는 걸 좋아하는지, 아님 서로 함께 준비하는 요리에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뜨면서 없는 반찬을 요구하는 눈치 인지... 밖에서 남이 차려주는 밥만 먹을 땐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 전에,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을 거라곤 생각할 겨를이 없고 묻기에 머쓱한 질문이라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몰래 하는 투자에 쫄깃해하고 미수 써서 대범하게 매수하는 성향이 있을 거라고 주린이 살림에,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물놀이에 진심 인지, 타는 자기 피부에 진심 인지, 따져본 적이 없었다. 선크림 철갑을 하고 우산까지 쓰고서 선베드에 기대어 있을 줄은.
휴식을 좋아하는 집순이, 집돌이인걸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 삐약거리는 주말에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소파와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발랄하고 당당한 것이 매력인 줄은 알았는데, 언짢아하는 시어머니에게도 마냥 쿨할 줄은 몰랐다.
자기 일을 중요시하는 것이 장점인 줄은 알았는데, 친정 행사 갈 때만 유독 일 몰입형이 될 줄은 몰랐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 우리는 또 다른 타락한 생명체와 함께 사는 현실에 나 자신을 적응시킬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은 어지간히 좋은 결혼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몰랐던 사소로운 것들로 얼굴을 붉히는 보통의 날들이 그 자체만으로 평온함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불현듯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집채만 한 파도가 집에 들이닥쳐 서로만을 생명줄 붙잡듯 의지해야 되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아내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호소하며 "몸이 이상해..."하고 쓰러진 뒤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허공을 응시한 채 입을 앙당 물며 천천히, 다 큰 성인의 몸을 샤워시켜줘야 하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냉랭하게 묻는 "잘 잤어?" 아침 인사가, 어느 아침을 기점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무사한 아침'이 되어 묵직하게 와닿는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 큰 아이를 하루아침에 잃고 퀴퀴한 창고에서 죽은 아이를 발견한 남편의 등을 연신 쓸어내릴 수밖에 없는 어느 아침의 비극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하루아침에 개인의 취향을 잃고 창문 너머로 병실 밖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날의 비극들에, 제사를 살뜰히 지내지 않은 탓일까... 전 5종이든, 그게 뭐든 마음속으로 그 어떤 불평이라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까_며느리의 마음에, 아들도 준비 안 하는 조상님의 제사를 반성하는 마음이 깃드는 때도 있다는 것을.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사랑해 주는 것뿐이다.
맞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이. 그럼에도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하지만 집채만 한 파도에 휩쓸려 폐허가 된 상황을 맞닥뜨리고 나서 사소롭던 분쟁들마저 그리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