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희 Jun 12. 2024

요즘의 양육에서 살아남기

발길질, 비비탄 총, 자살 에피소드의 날

오늘 아침 뉴스 중 하나.


한 지자체에서,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한단다. 일과 가정의 양립 등 사회적 환경 변화를 반영한 인사제도를 시행해 출산 친화적 환경을 조성한다는데...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추세에 맞춰 육아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사 끝에 막연히 '과연'이라는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전문직이거나 교사, 공무원 직군에 속하지 않는 것을 탓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내 주변 보통의 육아, 양육 중인 엄마들 중,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거뜬하게, 자유롭게, 병행하는 슈퍼우먼의 케이스는 흔치 않다. 가끔 직장인 맘의 고충을 들어보면, 단 양가 부모님의 희생이 베이스에 깔린다. 숭고한 희생 앞에, 부모님의 전폭적인 도움과 지지는 쏙 들어간다. 그 위에 반찬가게와 밀키트, 외식 찬스를 써서 먹이는 밥에 대한 엄마들의 자책감이 깔린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막상 퇴근 시각까지 남아있는 아이는 몇 안된다며, 엄마는 눈치를 덧바른다. 같은 직장 생활임에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 남편과 다른 퍼센티지가 적용된다며 억울함과 분노를 호소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전업주부맘보다 상대적으로 적음에... 무한한 죄책감으로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늘봄 교실이고, 뭐고 결국 학원 수업 등으로 뺑뺑이 돌려야 한다며 턱없이 높은 사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직장맘의 고충이 은근슬쩍 부럽더라만. 막상 단절된 경력의 강을 건너 취업의 관문을 넘어서고 험난한 직장맘의 세계로 들어서 온갖 고충들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 돌봄 비용과 학원비를 갈음할 만한, 그 이상의 월급을 받을 만한 자신도 없다. 양가 부모님의 양육 도움 찬스도 어불성설이다. 일단 전제에서부터, 글러먹었다.


하여, 난 한쪽엔 아이 태권도 가방을 둘러메고 중간 간식거리를 싸들고 하교 시각에 맞추어 길을 나선다. 라떼는 말이야. 초등학교 1학년 입학과 동시에, 170원 버스 토큰으로 요금 내면서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속에서 근력을 키웠어! 호기롭게 말하며 아이들에게 자유와 자율을 허락하고 싶지만.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조차 빈번히 일어난다는 자동차 사고로부터, 놀이터에서 친절함으로 가장한 채 지인 행세를 해, 유괴를 감행한다는 사건으로부터, '너네 엄만 잘 안 따라 나오니깐'이라는 6학년 시각에서의 검증을 거쳐, CCTV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성관계 놀이를 말하는 터무니없는 제안으로부터... 그 사건, 사고의 타깃이 우리 아이가 안 될 거라는 100%의 확신을 자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의 발생 시 "집에서 뭘 하길래!", "그깟 돈, 나가서 얼마나 번다고!" 탓을 넘어서 비하까지 담은 발언들을 감내하고 싶지 않다.


아이와 함께 하교하는 길에서, 아이의 학원 수업이 끝나고 함께 거니는 산책길에서, 서로 발길질을 하는 초등학생 무리들을 봤다. 그 무리 중엔,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우리 아이에게 대뜸 다가가, 갑자기 3차례의 발길질을 하던 남자아이 1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우리 아이를 탓하던 의아했던 남자아이 1.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점점 격해지는 강도에 참지 못했다. "왜 서로 싸우는 거니." 물었다. 먼저 남매로 보이던 아이들 2,3에게 발차기를 했던 아이 1의 변명은, 상대 쪽에서 먼저 '고추를 자른다, 목을 자른다' 발언을 해서 그랬다 한다. 남매 2, 3은 그런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놀랐다. 요즘 아이들의 발길질엔, 신체 훼손의 발언이 전제가 되는가.


그러기엔 '돼지, 꿀꿀이, 바보, 멍청이' 발언이 학교 폭력 중 언어폭력 명목으로 민원 전화감이 되기도 하는 요즘이었다. 그 중심엔 그 항의 내용을 선생님께 전달받고서 다시는 '돼지, 바보, 멍청이' 발언 따위 하지 말라며 아이에게 화를 내던 내가 있었다. 민원 전화를 넣은 집 아이는, 우리 딸아이 '소중이'를 언급하는 발언으로 우리 가정에 놀라움과 딸아이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던 아이였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소중이' 발언 2번이, '바보, 멍청이' 발언보다 수위가 높았건만. '소중이' 성희롱성 발언을 듣고도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참고 그냥 넘어갔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이를 앙당 물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이들인데 뭐...' 안일하게 생각해서 피해자로 가만히 있다가, 되레 덩이가 부풀려져 '학교 폭력' 가해자로,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어찌 됐건 산책길에서의 발길질은 무마시키고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간식을 나눠 먹이곤 해산시켰다. 집에 다 닿았을 무렵, 학교로부터 '비비탄총 소지 및 사용 금지 안내문을 받았다. 학교는 물론 가정이나 놀이터 등 어떠한 곳에서도 비비탄총을 일체 가지고 놀지 않도록 주의를 주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곧 맘카페 채팅방에선, 그 안내문의 배경에 '비비탄총으로 인한 5학년 아이 눈 실명 위기' 사고 소식이 있음이 들려왔다. 맙소사. 눈 실명 위기라니.


예전에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비비탄 총을 쏘아대던 아이에게 주의를 줬던 일이 생각났다. "전 사람을 향해 쏘지 않으니까 괜찮은데요?! 당돌하게 말하는 답변에, '쯧쯧쯧. 내 알 바 아니지 뭐' 돌아섰었다. 그 이후 아파트 고층 어딘가에서, 놀이터를 향해 비비탄 총알 세례를 당한 적도 있었는데... 관리 사무소에 신고만 하고, 서둘러 나와 내 아이들의 몸만 피신했었던 어느 날도 생각났다. 그때의 그 비비탄 총은, 이번에 눈 실명 위기, 사고를 유발한 그 비비탄 총이려나. 크지 않은 동네인지라, 더 간담이 서늘해졌다.


남편이 오기가 무섭게, 오늘 있었던 일련의 사건 사고 소식들을 브리핑했다. 그런데 대뜸 남편에게서 힘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인의 고등학생 자녀가, 오늘 자살을 했대. 전자 담배 문제로 부모님에게 혼나곤, 홧김에 뛰어내린 모양이야..." 맙소사. 전자담배로 인한 자살이라니.


이래저래 쉽지 않은 요즘 양육의 사례들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날. 말만 들어도 '운수 안 좋은 날'로밖에 설명이 안될. 사건 사고 소식이 많은 밤이었다.


신체 훼손 발언이 부른 발길질과 소중이와 돼지 꿀꿀이가 옥신각신하는 에피소드가 무색하게 우연치고는 너무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들로만, 꽉 채워서 마무리되었던 밤. 누군가에게는 억장이 무너져 꺼이꺼이 우는 밤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닦아내는 밤이었을 테다. 실로, 마음이 아팠던 밤이었다.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무사하게, 잘 보냈던 하루 앞에 한숨을 쉬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며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는 일. 남들 못지않게 여러 교육과 체험의 기회들을 제공하며 양질의 양육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 왕따, 학교 폭력 청소년 성문제뿐만 아니라 성 조숙증 등의 문제들, 각종 사건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아이들을 지키는 일. 이 모든 일들 앞에 '과연'이라는 단어와 '차라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