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극복을 위한 일상 스케줄 짜기
난소 기능 저하 AMH 0.87이라는 초라한 수치.
시험관 시술 1차 이식 실패 & 냉동난자 0 결과.
거기에, 자기 연민 한 스푼, 자책감 한 스푼 더하다 보니 상황 그 이상으로 무거워졌다. 시험관 1차 시술 한 고개 넘었을 뿐인데 주저앉을 기세였다. 강이슬 작가의 <안 느끼한 산문집>에서 보면, 사랑 끝, 갑작스러운 이별에 완전히 슬퍼하다가 완전히 괜찮아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셈해보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난임 일상도 결국은 반복이었다. 시험관 시술하는 동안 과배란 주사와 씨름하며 온 마음을 다 쏟고 희망을 키웠다가 이식에 실패하고 나면 그 실패와 적당히 잘 이별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동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내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돌이켜봤자 달라지지 않을 그 결과지. 내 안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배아 사진만 보며 매만질 일이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역시 이별에도,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완전히 괜찮아지기까지는 마음을 쏟은 시간_ 그 이상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1차 실패와 완전히 이별하고 마음을 다독거려야 할 때였다.
평범한 시간들 사이로 ‘왜?’라는 질문이 침범해 종종 억울해질 때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이 일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굳이 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자.
‘적당히 속상한 이별’과 다른 게 있다면, 병원에서 진행되는 과배란을 통한 시험관 시술을 견딜 수 있을 만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했다. 내 안에서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찾아야 했다. 어쨌거나 나도 나만의 답을 찾아 나섰다. 때론 상황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나으니까. 특히나 객관적인 수치로 대변되는 명확한 상황마저도 받아들이는데 힘들어하는 현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과배란 시험관 시술을 버텨낼, 난임에서 빨리 벗어나게 할, 난임 일상 스케줄을 만들기로 했다.
오랜만에 새 노트를 한 권 샀다. 공부를 시작하든, 새로운 일을 도모하든, 전환이 필요했다. 새 노트를 한 장 펼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없으니까. 노트 한 면 가득, 한 달 스케줄을 빼곡히 적고 하루하루 빗금 또는 수치로 표시했다.
- 난포 키우기에 좋은, 걷기 운동
- 기초 체온 올리기에 좋은, 족욕과 목욕
- 관심 분산을 위한, 한국사 공부와 불교대학 공부
- 마음을 화사하게 만드는 실전 수업 : 꽃 수업(180시간 플로리스트 창업반 수강),
- 전통 요리 클래스로 마음 다지기 & 체질 개선 및 영양 보충
- 엽산, 비타민 등 각종 영양제 복용
- 물 하루 1.5리터 이상 마시기
- 요가 & 명상
- 불교대학 수업 & 108배
- 때론 뒹굴뒹굴, 낮잠
- 도서관 총 공부 시간 체크
하루하루 시간을 나눠, 세부 종목에 체크하는 재미로 살았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 스푼, 두 스푼 섞어 저을 시간이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선, 백수 자괴감을 떨쳐버리려 한국사 자격증 시험공부를 했다. 3-4급을 따고 나선 1-2급에 도전했다. 주사 맞는 아픔에, 서러움 더할 틈이 없었다. ‘7세기 무왕 때 제작된 가장 오래된 탑으로, 석탑만 일부 남아있지만 목탑의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라는 짤막한 설명으로 출제되는 미륵사지 석탑은 평일에 공부했다가 헌 책방에서 구입한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길라잡이 삼아 주말엔 현장학습을 떠났다. 평일에 플로리스트 창업반 수업을 듣고 나선 꽃시장에서 꽃을 한 단, 두 단_한 아름 사 왔다. 이론과 실습으로 가 아닌, 내 기분대로 꽃을 꽂았다. 만든 꽃을, 다니는 절 한편에 수줍게 놓아두고 오기도 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꽃으로 화려하게 만드는 꽃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꽃을 놓고 가는 내게 ‘꽃 보살’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같은 산책길, 다른 기분을 느끼며 계절이 지나감을 만끽했고 산책길도 앱 어플을 통해, km로 체크했다. 그렇게 빼곡히 기록하니 내 일상에 난임이 아닌 이슈들로 생동감을 불어넣어 졌다. 규칙적인 일과를 기록하는 맛에, 바쁘게 살다 보니 밤에 잠도 잘 왔다. 역시 몸이 피곤해야 딴생각도 덜 드는 법이라며.
난임을 계기로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처음 내 몸을 들여다봤다. 기초체온이 낮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수족냉증, 고질적으로 심한 생리통, 자궁후굴, 골반 틀어짐 등의 내 몸의 이슈를 알게 되었다. 삼십 년 평생 별 관심이 없던 몸에 이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니. 어리석은 일이었다. 내게 찾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다, 내 몸에 대해 처음 생각해봤던 거다. 사실 내 몸은 지속적으로 자궁건강에 대해 신호를 미리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전까지 마법이 내 몸을 오갈 때마다 지독히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냥, 원래 그러려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규칙적이니 괜찮아.’ 그냥 넘겼다. 약을 자주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는 말에 고통을 참기도 했고 약을 먹고도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싣려 간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몸이 보내는 신호에 적극 응했어야 했는데. 어쨌거나 난임을 계기로 돌이켜 생각해보게 됐다. 한의원에서 냉한 체질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뒤늦게 생각이 났다. 두바이에서 오히려 잠잠했던 나의 생리통 이슈. 두바이에 입국하기 전에 있었던 난소 한 켠 물혹 이슈도. 모두가 덥다 덥다, 힘겨워했던 두바이에서의 사막 기후에서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생리통도, 물혹도 잠잠했거나 없어졌거나 했었다며. 과배란 주사로 난포를 키운다 하더라도 임신이 잘 될 수 있을만한 몸의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돌아가더라도 체질 개선이 필요했다.
먼저 기초 체온을 올리기로 했다. 족욕은 쉽게 기초체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욕조에 많은 물을 받을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족욕기를 사봤다가 과감히 내던졌다. 뒷정리의 수고로움과 물곰팡이 번거로움이 있어서다. 그리고 스텐 대야를 하나, 들였다. TV 앞에 앉기 전,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고 찬 물을 미리 넣어둔 대야 안에 뜨거운 물을 술술 풀어주었다. 아로마 오일 한 두 방울까지 똑똑. 심신까지 안정되었다. 이마에 어느덧 땀방울이 송골송골. 족욕은 하루 20분 향긋하게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습관. 목욕탕에서 사우나 티켓 20장에 2장 덤 이벤트를 이용해서 티켓을 끊고 목욕탕 회원도 되었다. 동네의 여러 목욕탕을 돌며 나에게 잘 맞는 목욕탕을 찾았다. 가장 위생적이면서 사람들 발길이 드문 목욕탕. 한가로운 시간대에 방문했다. 하지만 목욕탕이란, 원체 수다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나를 배경으로 탕 안에선 여전히 수많은 대화와 가십거리들이 오갔다. 매실 진액과 커피 한 잔이 따라졌다.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이 머물렀다. 그래도 나는 그저 마이웨이. 최대한 귀를 닫고 심호흡에 집중하며 나만의 물 속 체조를 즐겼다. 난임 기간 동안 일주일에 1 전신 마사지의 호사를 누렸다. 막힌 혈을 자극해주고 혈액순환을 도와준다는 전신 마사지. 월요일에 목욕탕에 들렀다가 수요일이나 목요일 즈음엔 전신 마사지를 한 번씩 해주는 주간 행사. 매주 마사지를 받기에 부담되는 때엔, 2주에 한번 정도로 횟수를 조절하기도 했다. 기초 체온 올리기의 생활화 뒤엔 또, 식생활 개선이 뒤따랐다. 늘 잘 먹었다는 거다. 난임을 이겨내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선 다음에 또 이야기하기로 한다.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 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