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가기 전에 식습관부터 개선했어야했다.

밀가루, 커피와 술과 천천히 이별하기.

by 김여희

난임 카페에서 자주 올라오는 질문 중, ‘이식 후 먹으면 좋은 음식 중에 뭐가 있을까요?’가 있다. 한식보단 파스파와 피자를 좋아하던 10대, 20대를 거쳐 내 몸이 거의 밀가루 화 되었을 즈음, 나 역시 수정란 이식 후 뭘 먹으면 좋을지 검색했다. 그리고 이식하기 전과 후 기간 동안, 내 30년 평생 먹어왔던 전복구이, 추어탕, 장어탕을 단 20일 동안 다 먹었다. 난임 병원 문을 열기 전부터 내 몸도 살뜰히 다져 놨어야 하는 건데... 알코올 기운만 좀 없앴지, 이미 물보단 커피가 흐르고 따뜻한 기운의 음식들보다 밀가루 일색의 음식들로 채워진 몸으로 난 뭘 기대했을까. 1차 시험관 시술에 거의 400만 원이라는 돈을 쏟아붓고 나서야 시험관 시술만큼 체질개선도 중요하겠구나 깨달았다. 난임 여성들에게 식이요법과 적절한 체중 조절 역시 중요한 터였다. 뒤늦게 시험관 시술에 좋은 음식과 피해야 하는 음식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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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야 하는 음식으론 아니나 다를까, 밀가루, 빵,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커피, 술 등이 있었다. 하루하루 1 밀가루, 1 커피 없이 버티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청천벽력 같지만,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정보였다. 그리고 동물성 & 식물성 단백질 골고루 섭취하기. 환경 호르몬 노출을 최대한 피하기. 환경호르몬과 음식 내 독소는 활성 산소를 많이 만들어내 내분비계 교란을 초래, 임신을 훼방한다는 거였다. 고단백, 고탄수화물 음식을 고열로 조리해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먹으면 그건 바로, 임신에 독이 되는 음식 폭탄. 체지방이 원활한 호르몬의 분비와 작용을 방해하는 탓에 비만도 난임에 영향을 준다고 하니 그러나 저러나 식단 조절이 시급했다.


섭취하면 좋은 음식으론 조혈 기능이 있어 자궁에 좋은, 해조류들과 해삼 등 해산물과 브로콜리, 시금치, 쑥 등의 녹색 채소들, 식물성 오일 등이 있었다.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생식 기능에 좋은 음식으론 들깨, 장어, 미꾸라지, 현미, 아몬드, 차, 호박 등이 있었다. 난임에 좋은 음식들로만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일도 아니었지만 일단 기존의 불균형한 식단 습관을 없애야 했다. 일단 이 역시, 천천히 급하지 않게 바꿔나가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천천히 이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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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웨이트리스에선 ‘조의 파이 가게’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의 홀로서기 과정이 맛있게 풀어져 나온다. 의부증과 폭력성이 있는 남편과 함께 사는 여주인공 제나는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파이 만들기로 달콤하게 구워버린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그녀만의 작명법으로 파이에 이름을 붙여준다.

‘바람을 펴서 얼이 나를 죽이는’ 파이

‘제나의 특별한 딸기 초콜릿 오아시스 파이’


그녀가 만든 특별한 파이를 극 중 까다로운 캐릭터의 조 할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파이”라고 칭찬한다. 맛있는 파이를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묘미다. 예를 들어, 제나는 검은 딸기와 산딸기를 으깨서, 초콜릿 반죽을 얹어 ‘바람을 펴서 얼이 나를 죽이는 파이’를 만든다. 제니의 요리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기분마저 으깨버리는 쾌감을 더불어 느끼게 된다. 그녀는 점점 억압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재미있고 비밀스럽고 섹시한 일을 도모하게 된다.


이건 작은 모험 같은 거야.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하다가 작은 모험을 하는 거라고.

난 누군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게 좋고

일어났을 때 기대되는 일이 있다는 게 좋아.

재미있고 비밀스럽고 섹시한 일 말이야.


제나가 의부증 남편과의 삶에서 잠시 도피하는 방편으로 파이를 구웠다면 나는 주로 제철 음식을 만들었다. 난임극복도 중요했지만, 너무 난임 키워드 위주로만 일상이 흘러가게 둘 순 없어 몸과 마음에 좋을 균형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음식이 주는 위안의 힘을 알기에, 요리를 하는 날이 잦아졌다. 결혼하기 전 취미로 배웠던 브런치 메뉴 클래스와 한식조리사 자격증 수업, 이탈리안 요리 클래스 등에서 배운 레시피들과 난임 병원을 다니는 동안, 스트레스 풀 겸 다녔던 향토음식 클래스에서의 레시피들이 적절히 뒤섞여 빛을 발하였다. 요리는 나만의 재미있고 비밀스럽고 섹시한 일이 되었다. 새로운 식재료를 보면 어떤 음식을 만들지 한껏 기대되었고 새댁의 손맛치곤 꽤 괜찮은 음식들이 나와서 남편과 나는 밥상 앞에서 단합이 잘되었다. 늘, 분위기 이상으로 오른 취기가 문제였지만. 필요 이상으로 분위기에 취해 푹 숙면을 취하는 밤이 늘어 문제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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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넣고 통통한 문어 다리 빨판 속 찌꺼기들을 씻어 내리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물과 함께 씻어 보냈고 보글보글 끓여지는 조림 앞에서 걱정, 근심들도 함께 졸여버렸다. ‘내 팔자에 과연 아이가 있으려나’ 다소 멀리간 고민은 비 오는 날 부쳐내던 김치 오징어 전과 함께 바삭바삭 구워버렸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올 땐 생마늘을 까곤 마늘을 흠씬 다져주었다. 향토 음식 클래스에서, '대체 저 젊은 처자는 칼질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하는 때가 빈번했을 테다. 때로 요란하게 칼질을 하고 보글보글 더 끓여내었다가도 만든 음식은, 사람들과 함께 야무지게 먹었다. 과연, 치유하는 요리하기, 먹고 마시기였다. 요리하며 스트레스는 증발시켜버리고 식습관도 점차 개선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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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어렵다고 하니 하니 90세 할머니께서, ‘용한 곳에서, 몸 보하는 약 한 제 지어주마... “솔곳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할머니. 약은 제가..... “ 물론 보약 한 제, 지어먹었다. 나뿐만 아니라 임신 준비에, 한약 한 제쯤으로 먼저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약보다 중요한 건 평소 식습관, 건강한 섭생攝生의 힘이었다. 남편 덕분에 내 입맛은 강제적으로 많이도 변했다. 남편은 데이트 한 지 얼마 안 되어 맛집 발견이라며 짱뚱어탕 집에 데려갔다. 할랑할랑 자전거 코스와 ‘홍어정식’ 먹방을, 주말 데이트 코스로 짜 왔다. 우리는 봄기운 머금은 냉이 크림 파스타 대신, 흰쌀밥 같은 알이 꽉 찬 주꾸미 제철요리를, 분위기 있게 스테이크를 써는 저녁 대신, 하모하모 샤부샤부가 있는 한여름날의 먹방을, 티라미수와 라떼가 있는 어느 가을날의 카페 데이트 대신,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며 전어구이 마실을, 새우 감바스에 와인 한 잔 대신, 겨울날의 조개구이에, 소주 한잔 나들이와 함께했다. 새로운 계절을 제철음식과 재료로 맞이하는 남편의 철저한 한식 식성 탓에 오랜 나의 식습관은 서서히 변해갔다. 결혼 전엔, ‘제발 한 번만 먹어봐라’ 떠먹여 주다시피 권하던 엄마의 추천에도 입 한번 벌리지 않던 딸이었다. 그런 딸이 꿈틀거리는 생낙지로 요리를 한답시고 밀가루와 소금을 넣어 벅벅 낙지를 주물대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배신감과 안도감 사이랄까. 삼십 년 평생 못 바꾼 딸의 식성을,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한 남편이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감사해했다. 바뀐 일상의 식단 외에도 코를 부여잡으며 흑염소 엑기스를 마셨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장어탕과 추어탕, 짱뚱어탕 등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흑염소 수육 한 점에, 흑염소탕 한 그릇으로 데이트를 즐겼다. 제철음식과 보양식으로 꽉 채운 식단 때문인지 겨울엔 수면양말을 챙겨 신고도 ‘추워 추워’하며 잠을 못 이루던 체질이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난 그렇게, 사랑하던 밀가루와 커피, 술과 천천히 이별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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