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닫아두셔도 좋습니다.
타마라 젠킨스 감독의 2018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에선 불임으로 고통받는 뉴요커 부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나이 마흔이 훌쩍 넘도록 여전히 임대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몇 년째 지루한 난임의 일상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채취, 이식, 시험 같은 의료적 절차를 적시하는 와중에 계속된 실패 속에서도 늦은 임신에 몰두하는 그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난임을 경험하지 못한, 비난임러에겐 결코 흥미롭지 않을 주제. 그리고 난임러에겐, 답답한 현실을 영화 속에서조차 재확인할 필요가 있나_ 썩 매력적이지 않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2018년 뉴요커 부부의 난임 일상이나 2021년 대한민국에서의 시험관 시술 일상엔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내 캐서린은 사람들이 여럿 모인 왁자지껄한 장소에서, 이탈리안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를 가볍게 추천받는다. 그녀는 멋쩍게 '사이클' 때문이라며 거절을 표한다. 그리고 뒤늦게 체외수정 시도로 인한 사이클임을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사과를 받는다. 또다시 멋쩍어하는 캐서린. 와인 한 잔 권유로 시작한 대화에,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건 소주 한 잔 권하는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광경이다. 사정 모르는 누군가의 질문은 늘 가볍게 던져진다. 의도 없이 훅 들어오는 안부 물음에, 오지랖 어린 관심에, 주변의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의 경험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점점 방구석 이불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시험관 시술 1차 실패 후, 잠시 난임에의 폴더를 접고 체질 개선에의 긴 호흡을 시작해 비교적 마음이 잔잔해졌을 무렵이었다. 근 몇 개월 만에, 단짝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뭐하냐, 밥 먹었냐?’ 물음 대신, ‘잘 지내지?’ 어색한 안부 인사로 시작했다. 평상시와는 달랐다. 오랜만에 먼저 연락을 준 친구가 반갑기도, 고맙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임신 소식을 물어봤다. 내 안부가 궁금했던 건지, 내 임신 소식이 궁금했던 건지. 친구의 안부마저도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기도 했다. 잠깐 손 끝만 닿아도 가시를 바짝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하지만, 친구는 결국 질문 몇 개를 기어코 더 던져놓았고 나는 분노했다. 친구는 그저 별 생각이 없었고 나는 예민했다.
'인공수정이랑 시험관은 뭐가 달라?
시험관은 비용이 얼마나 드니.
보통 난자 채취는 몇 개나 되나...?'
지금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닌 질문이었다.
‘그런 건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지 않니?’
하지만 대답은 시크하게 나왔다. 그리곤 한껏 날 서 있는 내 감정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매주 목요일마다 오는 찹쌀도넛 트럭의 설탕 묻힌 찹쌀도넛만으로도 한껏 들떴을 우리였을텐데. 바삭바삭 달달할 그런 대화였을텐데.
이식에 실패했다고,
난자마저도 채취하지 못했다고.
네가 묻는 그 ‘보통’이라는 범주 안에 나는 들지 못했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친구에게 할 대답들이 뒤늦게 생각났다. 가까스로 잔잔히 다스려놓았던 마음이었는데 생각 없이 던져진 질문 몇 개에 파랑이 일었다. 친구가 난임에의 정보를 구하기에 나는 사연이 너무 많았다. 찹쌀도넛을 입에 넣으면서도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때라면 더 이상 할 말 없다. 뭘 해도 쉽게 슬퍼지는 때에, 그저 친구는 심오한 난임 세계를 잘 몰랐으며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이 냉랭한 기류를 끝으로 그 친구는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이어 던진 물음이, 그저 관심이었을 수도 있었던 것을. 그땐 옹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마저 곁눈질해보는 SNS면서도 오랜 친구들에게 가볍게 해 보는 연락 한 번이 쉽지 않게 되었다. 20대에의 우리는 별거 아닌 것에도 마치 별 거라도 되는 양, 소소한 것들에마저 유난스러웠는데... 20대 때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30대의 우리는 심리적으로 사뭇 멀어진 모양새였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면서 대학에 따라 멀어지는 친구가 몇, 사회초년생과 취준생, 그 갈림길에서 헤어지는 친구도 몇, 결혼을 하면서, 청첩장을 주기는 애매한 친구 몇과 청첩장을 줬어도 안 와서 서먹해진 친구도 몇, 시댁이 가진 경제력이나 배경, 분위기에 따라 친구가 몇 멀어졌다. 임신에의 여부에 따라 소원해지는 관계도 몇 생겼다. 급기야 임신에 성공한 자와, 힘들게 임신을 준비하는 자 사이에서의 예민한 긴장감은 오랜 우정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인생의 속도에, 빛바래는 우정이랄까. 어쨌거나 한 치 마음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조여 오는 난임 일상이 주는 버거움은 우정이란 단어에 실소를 머금게 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나을 때도 있다며. 인생의 낭비는 가볍게 응하는 SNS가 아니라 진지하게 나누는 우정일 지도 모른다며. 시간이 갈수록, 우정이라는 단어에 시니컬해졌다. 친구 폴더는 그렇게 점점 닫아버렸다. 슬픈 30대의 어느 날.
나는 시시때때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 없이 살아도 된다. 그냥 없이 살란다 생각하고 있을 때 애가 생긴다.’라고 말하는 지인의 말에 격분했다. 난임 스트레스를 그나마 나누었던 친구 하나가, 다른 이에게 내 이야기를 전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마음이 편해야 아이가 들어선다.”위로에 어느 날은 눈물까지 났다. 화가 극에 달하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다.
이렇게 발 벗고 뛰며 난임 병원, 한의원, 곳곳을 헤매어도 나에겐 아이가 오지 않는다고!!
그런데 마음 편하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난소 기능 수치 0.87에, 자연임신이 그냥 될 거라고 생각해?
엄마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애먼 사람들에게 거친 말을 쏟아내다 결국 후둑후둑 눈물로 대화를 마무리해버리는 매너란. 몹쓸 대화법이었다. 친정엄마는 그렇게 가장 빈번한, 나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넋두리로 시작했다가 화로 마무리지었다.
넌, 만만한 게 친정엄마니.
관계가 좋았을 때의 얽힘과 공유란 훈훈함이 된다.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의 그것들이란 되레 약점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겐 가십거리. 난임은 스스로 공유해버린 흠이 되었다. 실패마저도 공유하지 말아야 할 나의 큰 약점. 난임 일상 속에서 난 극도의 예민함으로 뒤끝 있는 사람으로 하루하루 변해갔다. 그러다 2차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병원 입구에 섰다. 이제 인간관계 폴더는 닫고 시술 폴더를 클릭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