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하지 않기로해요

난자채취 실패 후 다시 마인드컨트롤

by 김여희

그렇다. 늘 실패 뒤엔 구덩이를 파는 시간이 뒤따랐다. 실망감이라는 녀석이 구덩이 하나를 파고 기약 없이 들어가면 그 옆에선 자괴감이란 아이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언제, 희망을 품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임신에의 의지를 다졌냐는 듯, 푹 꺼진 바람 풍선처럼 삶에의 의지마저 늘렁늘렁해졌다. 결혼 후 적당한 때가 되니 그저 아이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남들에겐 쉬어 보이던 그 일들이 어느새 내겐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래에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꿈꾸기 시작한 그 시도들로, 현재의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안에서 꿈틀대던 자책감과 연민의 감정들의 불똥이, 이제 바깥으로 튀기 시작했다.



DSC04487.JPG



마음에 불안감이 깃들 때, 선잠의 물결 속에 자주 꾸는 꿈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아테네에서 산토리니로 들어가는 , Blue Star Ferry위에 서있었다. 차가운 아침 안개만이 내려앉은 스산한 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서둘러 탔던 배였다. 한 손엔 캐리어 하나와 다른 한 손엔 배 근처 행상인에게 산 투박한 빵 하나만 들려있었다. 그때의 난, 합격 소식을 기다리느라 애가 닳았다. 필기시험과 3차에 거친 면접의 결과는 2주 뒤에 나오기로 되어있었다. 면접과 그룹토의를 거쳐 심층면접까지 어렵게 올라간 자리의 끝에 서있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애가 타, 도망치는 중이었던 게다. 기다리는 그 기간마저도 숨이 차올라 천국행과 지옥행을 오가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산토리니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겨울에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주민들마저 없다는 텅 빈 섬이었다. 그러다, 배 위에서 기다리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산토리니에 닿기 전 에게 해의 어느 지점 위였다. 예정보다 빠른 결과는 희소식이었지만, 메일은 congratulation이 아닌 sorry letter로 시작했다. 절망감이 너무도 깊어, 이대로 에게해의 바다에 침전하고 싶을 정도의 심정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에, 가장 불운한 사람이 되어 들어가고 있었다. 꿈에서 깼다. sorry letter를 받은 이후로, 나는 한참을 괴로워했다. 면접관의 마지막 한 마디가 잊을만하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See you in 2 weeks. 2주 내로 다시 보자.'

이번 시술을 기점으로 머릿속에 맴도는 한 마디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걱정은 제가 합니다. 난자가 6개 보이네요.'

난자 채취가 하나도 안될 수가 있을까.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던 신박한 결과였다. 담당의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예전 두바이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잠시 건네었던 애먼 외국인 면접관을 탓했던 것처럼 이제 난 ‘넌 걱정 말고 따라오기나 하세요’ 자신 있게 말하던 의사 선생님을 탓하고 있었다.



DSC04500.JPG





무난히 성공할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지 말았어야지.

금방 합격할 것처럼, 다시 만나자고 말하지 말았어야지.

난자 하나도 채취 못할 거라면, 6개나 보인다고 희망을 주지 말았어야지.

그렇게 실패할 거라면, 걱정은 내가 한다고 자신하지 말았어야지!


코너에 몰리게 되니 남 탓할거리부터 찾게 되었다. 일을 그르친 당사자는, 애먼 곳에서라도 원인을 찾고 싶어 하므로. 적어도 나는 그랬다. 힘듦을 핑계삼으며 탓할 거리를 바깥으로부터 찾던 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탓하는 것만큼 한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되는 감정이 또 있을까. 의사 선생님 탓하기에서 시작된 그 탓은, 정부의 난임정책에로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들을지도 모를 탓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설령 사실이 아니었는데도 온통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만 맴돌고 있던 나로 인해 더 곤란 해진 건 바로 가족들이었다.


이별 후에, 불합격 후에, 그게 어떤 상황이든 일을 그르친 후에 아무리 상황을 되새김질해봤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씁쓸함만 감돌 뿐이었다. 그건 난임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굴파고 들어가며 부정적인 감정들의 덩치를 키우기 전에, 방망이로 힘껏 내려쳐야 했다. 내 감정들은 그렇게 없애고 타인과의 관계에선 무엇보다 ‘탓하지 않기’ 연습이 필요했다. 비단 난임부부에게뿐만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이는 부부싸움을 피하는 방법이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었잖아.’ 대화가 치닫지 않도록 할 것. 하지만 신혼살림에서도, 난임 생활에서도 ‘탓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애당초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 따위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나부터가 자유롭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나는 난임 시술 원인의 당사자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행여 비난이나 탓하는 소리가 들려올까 두려워 먼저 선제공격을 날리기도 했다.


DSC08696.JPG


‘당신 덕분이야.‘ 우리는 평생, 일 년 중, 작게는 하루 중. 몇 번이나 마음을 먹을까.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소소하게 감사를 표하는 것. 어느 상황에서나 긍정의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 ‘덕분’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일상 속 숨어있는 작은 파랑새 한 마리를 발견해본다. 하지만 ‘덕분’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입 밖으로 내보내기 간지러운 일인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지만 탓하는 말, 나쁜 결과를 상대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말은 왜 이토록 쉬운 일인지. 삼십 년 평생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길을 걸어와 한 지점에서 만난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참 많았다. 치약 뚜껑을 닫는 문제에서부터 화장실을 오래 쓰는 일, 드라이기 선을 정리하는 법까지. 좁은 화장실에서만도 지적할 거리들은 넘쳐났다. 하물며 사소한 문제도 이럴진대, 남편의 입장에선 이 모든 난임에의 고난에 탓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을까 싶었다.


난임이 나의 형편없는 난소 기능 수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았을 때, 터무니없는 금액을 주사액으로 매달 흘려보내야 했을 때, 1년을 쉬임 없이 달려왔지만 모든 수고로움과 노력이 허사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당신 때문이야.’라는 마음 한 올 없이, 텅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싶다. 난임의 당사자, 본인의 마음도 스스로의 비난으로부터 지켜내기 힘들진대, 타인의 시선이 차갑거나 안쓰럽거나 못마땅하면 무척 힘이 들 일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사랑을 받으면 꽃봉오리처럼 마음이 활짝 열리죠. ‘(부다페스트 호텔) 하지만 한껏 떨어진 자존감에, 불안, 걱정이 서려있는 마음의 사람이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꽃을 피우기는커녕, 싹 하나 틔우기도 어려운 척박함 속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DSC08700.JPG




하지만 땅에 뿌리내리기조차 두려운, 흔들리는 사람에게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영화, 인터스텔라) 사랑 대신 담대함을 줄 수 있는 여유가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있다면, 견딜 수 있을 일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때론 바람에 몸을 실을 줄도 알아야 해(broken trail) 거창한 말 필요 없이, 바람에 몸을 함께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힘든 순간도 따지지 않고 함께 견뎌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히, 나에겐 애정 과잉의 사삭스러운 남편은 아니었지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의 사람이 곁에 있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세계를 구경하는 거야. 그저 두려워하지 않으면 돼(라스트 홀리데이) 이렇게까지 간지럽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와 나는 이런저런 말이 없이 난임 기간 동안 많이도 돌아다녔다. 전국의 절을 돌며 수없이 많은 돌을 얹어놓고 보양식 맛집으로만 발도장을 꾹꾹 찍고 다녔으며 난임이라는 단어를 잠시 잊을 수 있도록 걷고 또 걸었다. 어떤 상황에 대해 감정의 울림이 크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나로선 다행이었다. 난임에 원인 제공자란 없다.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니다. 탓하는 마음을 찾기보다 놓인 상황에 의연할 일이다. 난임이라는 척박한 사막을 현명하게 건너는 방법. 탓하는 마음 갖지 않기. ‘덕분’이라고 말할 그날이 곧 올 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난소 기능 저하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