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상을 슬기롭게 꾸려나가기 위해선 각자의 사정에 맞는 대응법을 잘 짜야한다. 그 사정이란 건 저마다 다르고, 은밀한 까닭이다.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_짜인 공식이란 게 없이 신의 한 수가 더해져야 하는 영역이라 더욱 그렇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게 무엇인 지 열심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난소 기능 저하임을 알게 된 후부터, 공난포의 공포에 시달리던 때까지 난임 병원만큼이나 한의원에도 열심히 다녔다. 양방, 한방 가릴 것 없이 노력해야 했다. 뭐라도 다 할 태세. (지극히 개인적인 사례이지만) 한의원은 즉각적인 난임 치료 효과보다는 체질 개선을 목적으로 다니마 했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한의원을 찾는 것도 과제 중 과제였다. 찾아가는 한의원 대부분, 상담 때는 사정이 딱하다는 듯 마음으로 응해주었다. 하지만 일어서는 자리에선 대부분 난임 패키지 명목으로 고가의 난임 프로그램을 내밀었다. 가끔 과도하게, 약과 비싼 패키지 치료만 권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반감만 설렁설렁 일었다.
그러다 난임 카페 검색을 통해 ‘이곳에서 시험관 성공했어요.’라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도 멀지 않은 동네에서. 난임 카페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는 늘 눈을 번뜩 뜨이게 하는 단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번 시험관 시술 성공 요인 중, 이 한의원의 처방도 한 몫했어요.’라는 제목이 더 적절할 것 같지만 그때의 내게 논리란 건 없었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성공했다는 사람의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나 역시 성공에 이르지 않을까 싶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막상 가보니, 비싼 난임 패키지를 권했던 한의원보다 작고 허름한 한의원이었다. 정확한 처방과 수치가 내려지는 양방 병원과는 다르게 한의원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한의원에서의 주된 치료는, 한약 처방과 침, 뜸 치료로 진행되었다. 찬 몸에, 체질개선이 필요하 다했다. 따뜻한 뜸을 무심히 배 위에 놔주고선 자리를 떠나시는 한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침을 놓고 뜸을 놓을 땐 늘 정적이 흘렀다. 타들어가는 한약재 내음을 맡으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의원에서 나는, 내 생각 안에서만 움직이는 유일한 30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움직이지 않고 TV나 핸드폰을 보지 않는 유일한 시간. 눈을 지그시 감고 코 끝으로는 한약재 향만 맡고 있으려니 문득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 때 빼놓고 하루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때는 얼마나 될까.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는 30분 동안에도 마음은 생각에 빠져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다 간혹 잠이 들기도 했다. 평온해졌다. 매주 화요일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생각마저도 멈출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었다. 생각을 내려놓는 일이, 한의원에서도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늘 머리 위로 난임 이슈에 동동 띄워놓고 살았다. 하지만 침을 맞으며 몸이 자유롭지 않은 동안 명상 클래스에서 잡념 비우는 연습을 하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생각들마저 고정시켜놓았다. 오로지 오고 가는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뒤로 물러서서 생각들과 감정들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판단하지 않고 느긋하고 집중된 마음으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소한 이벤트들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 일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난임도, 아이와 밀당하는 과정 즈음으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기분 탓인지 모를 일이지만 얼마나 지났을까. 몸에는 점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난임에의 잔상에 머무는 시간이 줄었다. 한결 잔잔해졌다.
평소에 손발 저림, 손과 발이 차갑게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인삼이나 감초 같은 한약재들을 처방받고 혈을 풀어주는 침이나 뜸 치료를 병행하였다. 두툼한 이불속에서도 손과 발이 시려 잠 못 이루다, 주섬주섬 수면양말을 찾던 숱한 겨울밤을 보냈건만. 난임이라는 단어와 마주하고 나서야, 겨울마다의 애로사항 해소에 나서다니. 그동안 내 체질에 대해 무지하다 못해 둔감했었다. 어찌됐건, 체질 개선을 위한 한의학적 처방 그 이상을 늘 얻어왔다. 나와 잘 맞는 한의원을 찾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까지 다스려졌던 까닭이다. 양방에서의 난임치료가 정확한 수치로 대변되는 적극적인 시술이었다면, 한방에서의 그것은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처방이었다고 하겠다. 복부와 자궁을 따뜻하게 만들면 자궁내막이 튼튼해지면서 착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집에 와선 별도로 좌훈과 족욕 등을 병행하였다. 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금처럼 정부 차원의 한방치료 지원이 이루어졌더라면 그때의 난 아마도 수시로 한의원에 들락거리는 참새가 되었을 테다. 최근에는 서울과 경기 등을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한의약 난임 치료 지원사업마저 시행되고 있다 하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서울시에선 6개월 이상 거주하고 (사실혼도 가능) 난임 진단서를 받은 부부(여성 만 41세 이하)에게 난임 치료에 도움이 될 첩약 3개월분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어떤 곳에선 자연 임신 가능성을 높이고 체외수정 등 난임 시술 효과 제고를 위한 한방 난임 치료 지원 대상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6개월 정도 한약 투여 및 침구치료 등 1인당 180만 원의 한방 난임 치료가 지원된다는 것이었는데 난임 기간 내내 양방, 난임 병원과 한방, 한의원 치료를 병행했던 나로선 지금도 솔깃한 뉴스다. 물론 한방 난임 치료 효과를 둘러싸고 치료 효과가 없다는 반대의견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 것으로. 난임 환자 본인 의사에 따라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 시술 전 후로 한방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나의 경우, 기초체온을 올리거나 자궁의 어혈을 풀어주는 치료나 한약 복용 등은, 시험관 시술이 시작되기 전 집중적으로 진행하였다. 과배란 주사를 맞거나 호르몬 약을 복용할 때는 한약을 잠시 끊고 이식한 이후에도 무리해서 뜸을 놓거나 하진 않았다. 의료진의 처방도 참고하였지만 결국은 내 마음 편한 방식대로 양방과 한방을 절충했단 이야기다. 그게 뭐든, 플라시보 효과도 있는 거니까. 난임 성공 여부에 대해, 그 누구도 이렇다 할 성공요인을 꼽지 못할 만큼 난임에서 임신으로 가는 데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내재되어있다. 그런 까닭에, 양방이나 한방에서 서로 주장하는 치료 효과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선 나로선 알 바가 아닌 것이었다. 난임을 이겨내야 하는 주체는 결국 나이기에,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처방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난임치료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양방은 맞고 한방은 틀리다.’ 말할 수 있을까. 임신 성공에 기여하는 여러 요소 중 차지하는 퍼센티지에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절실한 난임러에겐 그 지원책이 무엇이든, 지원은 늘 옳다. 새 생명을 싹 틔우고자 하는 숭고한 노력이, 현실 속에서의 비용 문제로 아스라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저 빠른 난임 일상 탈출, 그리고 임신 성공을 부르는 양방과 한방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기대할 뿐. 거기에, 난임 우울증까지 어루만져줄 난임 심리치료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