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극복하는난임 여행

부부관계 딜레마

by 김여희

#난임병원 에 다니기 전엔 늘 배란일에 민감했다. 배란일은 한 달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다. #배란일 에 맞춰 날을 잡아하는 #부부관계 가 마냥 격의 없이 뜨거울 수는 없었다. 배란일 전에 3-4일 정도 관계를 금했다가 배란일에 맞춰하면 더 임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에 성욕을 일부러 억누르기도 하였다. 아니, 남편의 끓어오르던 욕망이 억눌림당했다해야 맞겠다.


배란일을 앞둔 어느 여름날엔 #고흥갯장어 를 몇 마리 들였다. 고흥 갯장어는 빠른 조수와 뻘 때문에 다른 지역 갯장어보다 더 맛있다 했다. 갯장어는 그 날밤 하모 샤브샤브로 재탄생했다. 거친 물살과 단단한 뻘 바닥을 버텨내느라 살이 찰질 데로 오른 장어. 장어의 꼬리, 그 끝엔 임신 성공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포근포근하게 익은 갯장어에, 부추까지 살짝 익혀 얹어주었다. 쌈을 싸주며 크게 한 입 넣어주는 내 눈동자는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하지만 식탁에서 어느새 소파로 이동한 남편 님의 눈꺼풀은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정력에 좋다는 장어와 부추, 그 이상으로 소주까지 과하게 드신 까닭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배란일인데! 원대한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드르렁드르렁 들려오는 소리에 분노지수만 드높이다 그렇게 한여름밤의 거사는 꿈으로 끝났다.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후, 어느 겨울날엔 고민에 빠졌다. 보온성과 섹시함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잠옷은 없는 걸까. 수족냉증의 숙제를 안고 사는 내게 섹시함이란 기대할 수 없었다. 수면바지를 배까지 올려 입고 복부에 워머까지 두른 상태에서 그 누구가 섹시함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까면 깔수록 옷들이 나왔다. 나는 그야말로 털북숭이였다. 기초체온은 올라갔지만 타오름 지수는 한없이 내려갔다. 한겨울의 거사도 그렇게 끝이 났다.


DSC05057.JPG




난임은 부부가 함께 내원해 원인을 찾고 그에 맞는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임은 임신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조금 늦어지고 있는 과정 속의 길. 건강한 임신을 위해 부부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난임에만 초점이 맞춰진 부부관계가 과연 마냥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함께 하는 치료가, 굳이 #시험관시술 이나 #인공수정 등의 병원 시술에만 국한되는 걸까?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도 얼마간은 배란일을 계산하기 바빴지만 언젠가부터 배란일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게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법이라며. 난임을 이겨나가는 동행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을 테다. 부부만의 이야기. #난임일상 이란 끝이 어디인지 몰라 불확실함에 서로 지칠 수 있는 호흡이 긴 여행이다. 그래서 필히 함께 하는 그 여행에, 너무 지치지 않도록 완급조절이 필수적이다.


우리 부부는 늘 반주와 함께 했다. 요리를 해서 내는 음식들마다 술 한 잔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어서. 칼칼하게 끓인 바지락 술찜엔 소주와 함께 했고 묵은지 송송 썰어 넣어 느끼함을 덜어낸 베이컨 까르보나라엔 와인을 마셨다. 맥주는 별다른 안주가 없어도 밤마다 놀러 오는 친구였다. 병원 일정이 없는 때에 그렇게 한 잔, 두 잔 홀짝이던 술은 우리 부부에게 이벤트가 되었다.


‘이렇게 자주 마시다가, 정자 질 떨어지겠어.’


정자와 난자의 질을 걱정하기 시작한 어느 날엔 샹그리아를 만들었다. 좀 더 건강한 느낌으로 마셔보마 싶어서. 샹그리아는 스페인 가정에서 시원하게 만들어 마시는 전통 음료.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에 사과, 오렌지, 복숭아, 레몬 등의 과일을 얇게 썰어 넣고 설탕 시럽 등을 넣어 마시는 칵테일 와인이다. 저렴한 와인에, 제철 과일만 몇 넣고, 오렌지 주스와 설탕 시럽, 계피 정도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만들기는 쉽지만 마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분위기를 돋아주는 멋진 와인이었다. 주로, 오렌지, 레몬, 라임, 사과, 복숭아, 멜론, 베리류, 파인애플, 포도, 키위, 망고 등을 많이 이용하는 데 있는 과일만 넣어도 충분했다. 치즈나 칼리마리 등의 해산물 요리, 육류에 곁들여먹음 더 좋은 샹그리아. 부부관계마저 달달해졌다. 난임에 지치기 쉬운 그대에게, cheers. 또 다른 술로는 모히또가 있었다.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마시기엔 비쌌던 한 잔이라 직접 만들어 홈 칵테일로 종종 즐겼다. 마음은 몰디브 가서 한 잔이었지만 가난해진 난임 살림에 몰디브는 어불성설이었다.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헤밍웨이) 모히또는 헤밍웨이가 사랑했다는 칵테일이기도 한데, 집에도 쿠바의 아바나 술집을 거니는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바카디 럼에, 토닉워터 넣고 라임은 짜내고 애플민트는 으깨어 시원하게 마시는 모히또 한 잔. 민트향과 라임향 사이, 기분까지 상큼해지는 느낌의 한 잔이었다. 샹그리아보다는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모히또는 채취든 이식이든 실패의 역사를 기록한 날에 이벤트 삼아 마셨다. 마음까지 청량하게 해 줬던 한 잔이다. 그러나 저러나 cheers라며. 마음이 편안한, 준비된 엄마 아빠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아기 천사는 찾아들 거라며.




DSC01188.JPG




각 시, 도마다 #난임부부 의 #난임극복 을 위한 여러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임부부 자연치유 캠프 지원’ 사업을 신설한 지역도 있다.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부부가 힐링의 시간과 함께 보내며 임신의 성공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최근 어느 시 주관의 자조모임에선 ▲난임 대상자의 우울증 극복과 관리 ▲부부 만보 걷기 ▲천연 한방샴푸 만들기 ▲부부 감정코치 ▲직접 만든 드라이플라워 편지지로 마음 나누기 등 총 5회에 걸친 부부 대상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난임 이슈로 부부갈등이 생길 수 있기 마련인데 부부 각자로든, 이런 시도 지원 프로그램으로든 서로 소통·공감할 수 있는 부부만의 힐링법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아까 말했듯, 출구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그래서 더 스펙터클 하면서도 기대되는 그런 난임 여행이니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난임 탈출,양방과 한방의 공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