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기능 저하에, 저반응군 카드를 추가하다
역삼동 주택가를 지나갈 때만 해도, 할랑할랑 기분이 좋았었다. 2년 남짓 살던 옛 동네였다. 하지만 예약 시간 2시가 다가와 병원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간만에 콧바람 쐬러 오는 서울길이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병원이란 하늘을 날아 투명한 하늘 아래 몰디브로 간다고 한들, 결코 설레는 길은 아니다. 부산, 광주, 대구에 이어 새로운 병원을 찾았다. 임신, 출산의 종착점으로 가는 마지막 병원이 되길. 이번엔 서울이다. 몇 차례에 걸친 과배란 시술로, 난자 채취 응답마저 받지 못한 난임러가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본 것이다. 과배란 때보다 더 적은 양의 약을 쓰되 내 몸에 맞는 방법으로 저자극이나 자연주기 시험관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아도 난자가 많이 안 생기는 경우에는 난자의 질이나 자궁 내막의 상태가 좋아지도록 오히려 주사 용량을 낮춰 시도하는 저자극 배란 유도가 효과적이라는 글과 경험담을 읽은 뒤에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또 다른 병원과 시험관 시술법을 찾아 나서려는 나에게 어디선가 ‘극성’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조바심 갖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도 뒤따랐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우울감 사이를 오가던 내게 그만큼 무책임하면서도 무관심한 조언은 없었다. 난소 기능 저하 수치에 쫓겨본 적이 있으신 지. 매번 실패 뒤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수백만 원의 돈을 허망하게 지켜본 적이 있으신 지.
하지만 주변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杞憂는 아니었다. 새로운 난임 병원, 그것도 다른 지역에서 다른 시술법으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혈액검사로 돌아가서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의료진과의 교감 및 공감대마저 다시 쌓아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접었던 희망을 조심스레 펼쳐내며 서울 난임 병원에서의 첫 진료를 마쳤다. 이번엔 잘해보자. 첫날 진료비로 나온 146,700원의 비용 영수증은 호기롭게 구겨버렸다.
두 번째 병원 방문은 남편과 함께였다. 냉동 보관을 위한 정액 채취의 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위해선 정액 채취가 필수다. 내원해서 채취한 정액은 작은 용기에 담아 연구실로 보내진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 각종 주사에, 호르몬 약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어지는 건 와이프 쪽임이 분명한 데... 남편의 마음도 마냥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산부인과라는 익숙지 않은 병원, 그것도 작은 방에서 포르노 영상을 앞에 두고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정액 채취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병원을 옮길 때마다 매번 이런 난처한 과정을 거치게 함이 미안해서, 난 부쩍 말이 없어졌다. 아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험관 시술은 마음을 아무리 굳게 다잡아도, 예비 엄마와 아빠에게 힘든 여정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안팎으로의 노력이 무색하게, 첫 번째 난자 채취에서마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배란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져서 오후에 주사를 맞고 바로 다음날 채취를 해야 한단다. 모든 게 예상치 않게,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내 몸 안의 속도인지라, 그에 관해 탓할 생각은 추오도 없었다. 불과 월요일에 봤던 진료인데 두 밤 사이, 이렇게 빠른 진전이 있었을 줄이야. 흘러가는 모양새론 이번에도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채취를 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노력하는데도 힘들다고 느껴지는 인연이라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맞는 거라며. 애초에 관찰 주간 삼아 별 기대 없이 시작했던 거라지만 또다시 절망감이 스며들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 멍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면서도 무심결에 가져보았던 희망 한 올이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번째 텀이 시작되었다. 초음파를 보니 오른쪽에 기초 난포가 3-4개 정도 보인다고 한다. 처음 도전해보는 저자극 시술.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으면 자궁에 무리가 가서 착상률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주사를 맞아도 어차피 양질의 난자가 많아지지 않을 거라면 주사 용량을 낮춰서 자궁 상태를 보존하고 난자의 질을 높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여러모로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내게 합리적이었다. 상담 끝에 받은 주사는 고날에프 150ml와 페마라 포함 2종류의 약이었다. 배란유도제인 페마라는 원래 유방암에서 차단되어야 할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차단시켜주는 보조치료제라고 한다. 에스트로겐 (E2)의 생성을 차단하면서, 난소 내의 안드로겐을 증가시켜, 지속적인 난포의 성장을 유도하는 촉진제로 기능을 한다고. 이 페마라로 동 난포의 동시 성장을 유도하면 여러 개의 동난포가 8-10mm 크기로 약에 반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여기에서 부족한 것을 소량의 과배란 유도제로, 난포를 끝까지 성장시킨다고 한다. 그게 고날에프인가봐. 어려운 설명이었지만 정해진 시각에, 일정한 주사액을 주입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 긍정적인 마음으로, 파이팅해보는 것으로 했다.
의사 선생님과 다시금 마주했다.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마주했던 첫 날, 내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응원을 불어넣어 주시던 선생님이었다.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했다. 이미 얼굴에선 근심의 빛이 서려있었다.
“쉽게 말해, 고용량의 주사와 약물들로 뷔페를 차려줘도, 먹는 아이들이 많지 않네요.
뷔페의 음식들이 무의미하다는 의미예요...”
“이번엔 이전의 과배란 주사에 비해 차린 것도 없었지 않나요.”
고날에프 150ml * 2, 폴리트롭과 세트로타이드 * 2. 그리고 난자 채취 하루 전날, 난포 성숙 주사. 약은 페마라에 이어, 세레브렉스만. 정말이지 과거, 다른 병원에서 진행했던 과배란 주사와 약에 비해 정말 소소한 정도였다. 초음파와 피검사를 통해서 본 결과는 그러나 저러나, 저반응군이었다. 난임러들 중에서도 나는 AMH(항 뮬러 관 호르몬) 수치가 0.5~1.1ng/㎖ 수준인 ‘난소 저반응군’의 사람. 과배란 유도 시 과배란 약제에 반응해서 난포가 성장하면 난자를 채취할 수 있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 사실 아무리 많은 약을 투여한다고해도 소용이 없다는 거다. 부산, 광주, 대구... 유명하다는 난임 병원 세 곳을 거치고 나서야 저반응군 소식을 처음 들은 셈이었다. 허탈함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편으론 새삼, 병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보냈던 두세 달의 아까웠던 시간과 공력들이 나름 의미 있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과도한 약과 주사는 내 몸에도, 내 지갑에도 적절하지 않은 처방이었을 테니까. 나에게 희망이란 있는 걸까. 어렵게 걷는, 시험관 시술의 길 속에서도 점점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날, 난 인생에게서 퍼즐을 한 조각 더 받았다. ‘시험관 시술’과 ‘난소 기능 저하’에 이어, ‘저반응군’ 퍼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