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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던 비행기 타는 어느 좋은 봄날

by 김여희

꽃으로 푸진 계절

온 꽃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모양으로,

응원을 쏟아내고 위로를 남발하는 계절

덩달아 새들도 재롱부리듯 소리로 아양 떠는 계절

이 좋은 봄날에, 동생이 비행기를 탄다.


아이들 간식 도시락 싸는 어느 날,

온통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느 날,

마당에서 등이 촉촉한 달팽이를 발견하고 작은 손가락을 가져다 대던 어느 날,

독일 땅에서 키워낸 깻잎 몇 장이 기특하던 어느 날,

바베큐로 통삼겹에 행복해하다, 컴플레인을 말하는 옆집 독일 아저씨 앞에 갑자기 미안해지는 어느 날.


숱한 어느 날들을 놓치고

대신, 홀로 싸워왔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드디어 캐리어를 돌돌돌 굴리는 날.


그 경쾌한 소리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만큼이나

쭉 그렇게, 설레고 행복하길,


오래토록 품에 담지 못해 아리고 아렸던 아이들과

마냥 재미지길.


대견하던 시간들을 건너느라 늦어진 만큼

더 홀가분하게 훨훨 날아가

독일에서 새로운 그림일기를 쓰길.


그리고 가끔 한국에 돌아와

젤리며, 앰플이며, 멜라토닌 스프레이며,

무심하게 잔뜩 늘어놓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양씬 먹는,

빈 술잔이라도 갖다 대며 또다시 건너온

여러 계절을 축하하고 기특해하는, 그런 날이 오길.


잘 가.

사랑하는 내 동생.

언제나 응원해.


https://naver.me/IItnUE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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