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오마카세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는 날도 더러 있습니다.
쇼핑앱을 눈으로 훑다가 손가락 끝으로 손쉽게 주문해 이른 아침 깔끔하게 포장된 생선을 받아보는 것보다 수산물 공판장에 가서 직접 생선을 골라오는 걸 좋아한다. 공판장 이모님이 추천해 주시는 그날 그날 실하고 알이 꽉 찬 수산물들. 특히 갈치를 사서 조림용과 구이용으로 나눠 검은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와 요리하는 시간. 두툼한 갈치에 부침가루를 입혀 노릇노릇 바삭하게 굽고. 포근포근한 감자와 무에 양념이 잘 베이도록 조림을 하는 시간이 좋다. 아이들 입 속 말고도, 내 입 속에도 실한 갈치 살토막을 넣으면서 행복해한다.
하지만 갈치를 볼 때마다, 먹을 때마다, 나는 자주 어릴 적 기억 속 엄마를 떠올린다. 예전 우리 어릴 때 몇 토막 안 되는 갈치를 우리 세 자매에게 나누어주고 아빠 몫으로 한 두 토막 남겨두고. 엄마 몫으론 내 눈엔 저것이 늘렁한 살인가 내장인가 싶은, 갈치 겉살만 먹던 엄마. 갈치의 까슬까슬한 비늘을 떼어낸 가장자리. 내장이 걷어져 나갔지만 검은 막이 있는 맛스럽게 보이지 않는 그 부위 말이다. 엄마 입속으로 제대로 된 갈치조각을 몇 점 입으로 못 옮기던 못난 엄마가 생각나... 애초에 나는 굵직한 갈치를 고른다. 내 입 속에도, 아이들 입 속에도, 알차고 실한 것들로만 채운다. '엄마처럼 못난 엄마는 안 할 거야!' 속 모르는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61년생 엄마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그 못남을 장착하고 있다. 우리 세 자매의 입에 늘 양보하더니 이제 엄마의 순번은 다섯 손주들 다음으로도 밀려났다. 그렇다고 안 먹는 건 아니라지만, 내 눈엔 영 공격적으로 달라드는 모양새가 아니다.
언젠가는, "엄마도 좀 먹어!" 말하니, 이제 고기 말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로 했단다. 소식小食을 한다고 한다. 영 틀린 말 같지도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음식물 쓰레기 줄인답시며, 손주들이 남긴 음식들까지 먹어해 치울 때까지만 해도 갸우뚱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엄마와 단둘이 가는 오마카세 레스토랑에 가기 전까지 온통 그런 줄 알았다.
1++한우를 48시간 숙성시켜 우마카세 컨셉으로 코스별로 요리를 내놓는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14만 원 상당의 한우 오마카세 레스토랑. 온전히 딸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으로 가는 자리도 아니었거니와, 손주들과 함께 가는 자리도 아니어서 그런지. 엄마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곳곳에 그림 작품들이 걸려있는 갤러리 같은 레스토랑에 도착해,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던 식기들, 이름이 적힌 웰컴 카드가 놓인 바 테이블에 앉아 음식들을 기다리는 순간부터 하나하나 다른 컨셉으로 나오는 요리들을 맞이하는 때까지... 레스토랑에서의 엄마는 평소보다 한껏 들떠 보였다. 엄마의 눈은 반짝반짝. 엄마의 고개는 연신 두리번두리번. 혼잣말과 질문이 늘었다. 생소해하면서도 그 생소함이 어색하지 않고 기분 좋은 느낌! 엄마는 엄마의 몫으로 나온 음식들 하나하나 눈으로 탐색하며 향을 음미하며 재료들을 살폈다.
그래, 엄마의 첫 번째 전공은 식품영양학이었지. 늘 다른 이의 취향과 영양을 고려해 짜는 식단과 대량으로 조리하게 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엄마였지. 그런데, 안팎으로 크게, 작게 남을 위해 늘 요리해 왔던 엄마는 온전히 엄마를 위해 대접받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싶었다.
작은 유리병 안에 담긴 샐러드의 색감에 감탄하고 샛노란 호박 스프 위에 흩뿌려진 소스를 궁금해하던 엄마. 엄마는 부드럽고 매콤하던 육회 속에서 크로스타드의 재밌는 식감을 누리고. 바삭한 가지 속 부드러운 새우살도 탐닉하는 듯했다.
알맞은 굽기로 구워져 육즙을 가득 머금고 나온 채끝 비프스테이크도 연신 엄마의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들기름과 바질페스토와 엔젤 파스타 콜라보가 좋았던 파스타를 신기해했다.
요리 앞에 늘 전문가이던 엄마가 생경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는 한 여자가 되고, 맛과 색감을 본능적으로 즐기는 한 소녀가 된 것 같았다.
엄마랑 오길 잘했다...!
평소 술을 즐겨하지 않는 엄마가 갑자기 하이볼을 한 잔 하겠노라고 말했다.
(시켜, 시켜. 오늘 엄마하고 싶은 거 다 해.)
20대 초반에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지금 다섯 아이들의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 근 40여 년간 켜켜이 희생과 헌신과 인내만을 쌓아왔을 엄마에게서 다른 모습을 봤다. 십수 년 습관처럼 박힌 엄마의 노력들이 단박에 바뀌는 건 아닐 테지만 엄마도 가끔 엄마의 플렉스를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는 늘 너희들이 배불리 먹으면 된다고 했지. 나는 그게 거짓말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어. 정말로 배가 부르더라, 너희들이 잘 먹는 걸 보면.
-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모든게 엄마 덕분.
#본앤우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