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내 삶을 지탱해 줬던 거대한 거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당장에 큰 상실감이 내려앉지 않았다. 나를 보호해 주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던 커다란 존재가 사라졌다는 데서 오는 허망함이 아니었다. 내 마음과 행복이 그 거목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고 있었는지, 그 그늘 아래에서 얼마나 안심하고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들이 문득 찾아왔다. 그리움은 오히려 사소하고 뜬금없는 일상의 것들로 속삭였다. 어떤 날은 거대한 울타리가 걷힌 듯 나를 황량하게 만들었고 어떤 날은 내 아이의 작은 눈망울 속에서도 또렷하게 떠올라 저릿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추어탕 한 그릇, 갈치속젓 한 스푼에도 깃들었다.
추어탕鰍魚湯. 미꾸라지 추, 물고기 어, 끓일 탕. 결혼 전까지는 한 번도 내가 스스로 시켜 먹을 메뉴로 상상해 본 적 없던 음식이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참숯에 통삼겹살을 얹고 굵은소금을 몇 알 뿌린 채 앞 뒤로 노릇하게 삼겹살을 구워 쌈 싸 먹는 즐거움조차 몰랐던 입맛이어서 그렇다. 남들이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에 달려들 때 나는 조용히 참치 캔을 따서 참치 한 토막을 상추에 얹어 쌈장맛에, 인스턴트 참치의 고소한 맛에 만족했으니까. 삼겹살에 욕심이 안 났던 터라 파채와 구운 마늘을 얹어 먹을 생각도 딱히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추어탕은 30대 초반 난임병원에서 배아를 이식한 후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난자 질이 여의치 않아 냉동시킬 단계로 가지도 못하고 신선 배아를 몇 이식하고는 숙제처럼 추어탕을 먹고 일주일을 누워 지냈다. 누운 채로 수정이 잘 되고 있나 궁금해하면서 배를 만질만질하다가 가끔 일어나서 전복과 추어탕을 번갈아가면서 먹었다. 감흥이 없었다. 고단백의 음식을 먹으면 좋다기에 먹었던 수단과도 같았던 음식.
난자질이 쭉 좋았던 적이 없었던 데다, 배 주사를 맞아도 채취된 일도 드물었다. 이식 단계까지 나아간 적이 없어 한참 추어탕과 전복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체질 개선에 나선답시고, 일주일 1 추어탕 하는 식으로 고단백, 영양식을 매일같이 챙겨 먹다 보니 어느새 냉동 난자가 몇 얻어지는 운수 좋은 날이 생겼다. '마음 편히 먹어라.'라는 뻔한 조언은 듣기에도 싫었지만 막상 맛집을 찾아 영양식이든, 그 지역의 별미든, 먹고 쏘다녀서 그랬는지. 실제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한 끝에 체질이라는 게 개선이 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방법을 이리저리 바꿔 시도한 끝에 이식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맛있게 버텼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일주일 1 추어탕' 하던 난임의 시절을 지나 현격히 체력이 고갈된 아빠와 함께 '일주일 3 추어탕'하는 때를 맞이했다. 다른 메뉴엔 크게 감흥이 없던 아빠는 늘 탕이나 찌개 종류를 번갈아가며 먹고 싶어 했다. 추어탕 맛집을 동네 별로 번갈아가며 아빠와 돌아다녔다. 60대였지만 80대보다도 더 위태롭게 걷는 아빠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두가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이미 나트륨 함량이 높은 추어탕에, 연신 갈치속젓을 한가득 먹는 아빠를 바라봤다. 사랑, 연민, 동정이 어린 눈빛이 아님을 고백한다. 그때는 아빠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땐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이제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드시고 싶으신 대로 드세요."라는 관대한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몸에 좋다는 해독주스와 삶은 야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속 모르는 갈치속젓만 넣는 입맛이 밉기만 했다. 밥 반 숟가락만큼 한 입에 떠서 푸딩처럼 젓갈을 먹는 아빠를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다시 1주일 1 추어탕 중이다. 아빠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추어탕 집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프로혼밥러이건만. 이 추어탕 집에 혼자 갈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든다.
추어탕뿐만 아니라 보신탕도 파는 곳이라, 혹시 아빠가 이 집을 알았더라면 보신탕도 먹고 싶어 했을까? 싶고. 날마다 반찬이 조금씩 바뀌지만 아빠가 좋아할 법한 겉절이는 매번 나오는터라... 이 겉절이는 아빠가 아마 흡입했을 메뉴였겠는데?! 싶어서 그렇다. 오늘은 시골 된장에, 양파를 버무린 반찬이 나왔다. 짱뚱어탕 집에서 아빠랑 두 번이나 리필해 먹던 새초롬한 양파무침이 생각났다. 그 집보다 시골된장에 버무린 이 집 양파무침을 더 좋아했겠네. 싶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들은 "양파 하나 먹고 저리도 우나. 지독히도 양파를 못 먹는 모양이다... 했을지 모르겠다. 까도 까도 아빠 생각이 나는 통에, 서러운 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자 밥은 잘 먹는 사람이라 추어탕 안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밥을 말아 한 그릇 싹싹 비웠다. 이렇게 맛있는 집을 아빠는 왜 몰랐을까. 아빠가 알았다면 매일이라도 왔을 집인데... 먹고 나오는 길에 또 생각했다. 먹는다는 건 때로는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인 것 같다면서...다음엔 담백하게 아빠를 추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