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법회에 따라간 엄마

by 김여희

게송을 절로 읊을 줄 아는 신실한 불자도 아니건만 나의 협찬여행은 절로 시작해서 절로 끝날 때가 많다. 구례 화엄사 화엄매에 붉은 꽃망울이 터뜨릴 때가 오면 화엄사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전남 구례에 있는 펜션을 신청한다. 전남 부안의 풀빌라에 당첨된 운수 좋은 날엔 전나무 숲을 거닐어 부안 내소사 꽃창살 문양에 감탄하는 것을 끝으로 여행을 마무리한다. 절에 닿기 전 공양 시각이 맞는 날이면 절에 들러 공양의 복까지 함께 얻어오고 절에서의 밥때에 못 맞추면 절 근처 읍내에 가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 백반기행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 엊그제 절에 다녀왔는데 또 절에 가?"


어린이 법회에 참석하기로 한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물었다. 늘 군소리 없이 절에 가고 사뭇 진지하게 삼배를 올리던 아이였기에 절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질문이 꽤 반항적이었다. 다리가 아프다며 절에 오르는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서더니 한쪽 다리를 건들건들하며 자세마저 비협조적이었다.


"그렇게 절이 좋으면 엄마 혼자 다녀와!"


아이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철저히 엄마의 취향만으로 아이에게 산사 행을 강요한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절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오려고 하는데?"


'절에서 먹는 밥'이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번뜩이며 동그래졌다. 각자의 발우에 먹을 만큼 음식을 덜고 그 음식들을 남김없이 먹고 스스로 그릇까지 씻어내야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는 아이의 상식 선에서의 발우공양. 그런데 가던 길을 멈추던 아이는 왜 갑자기 발우공양 단어 앞에서 걷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발 끝에 경쾌함이 싣리더니 가뿐해지기까지 했다.


"절에서 공부할 때 얌전히 있어야 밥 준다!"


이미 저만치 달려가는 아이의 등 뒤로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의 말엔 늘 조건이 싣린다. 그런데 공양 시간 1시간 포함 총 3시간이나 되는 법회 시간을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슬그머니 노파심이 일었다. 어린이를 위한 법회였지만 원하는 부모님은 참관이 가능하다는 말에 절 교육관 뒤 쪽 한 편에 팔짱을 끼고 앉았다. 하지만 막상 법회가 시작되니 아이들은 절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을 시작으로 삼보, 반배, 합장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열정적으로 퀴즈를 풀어냈다. 식당에서 밥 먹는 시간에마저도 작은 엉덩이가 자주 들썩들썩하는 통에, 동영상이라도 보여주면서 들뜬 아이를 눌러줘야 하나 고민할 때가 많았는데... 쌍둥이들이 심지어 두툼한 절 방석에 앉아 싱잉볼 소리에 눈을 감고 명상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스님에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난감이나 젤리 하나 없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능력이 있으시군요!'


수업시간에 20명도 안 되는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각종 교구를 꺼내어 들고 목청 높여 소리치며 달콤한 젤리를 재물 삼아 답을 맞히기를 종용하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진지하게 절에서의 수업을 마친 아이들에게 설레는 발우공양 시간이 왔다. 공양간으로 가는 아이들을 쫄랑쫄랑 따라가면서 나는 또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아까 스님 하시는 말씀 잘 들었지? 먹을 만큼 덜어서 먹고 절대 음식 남기면 안 되는 거야!"


공양간 안에 도착해선 묵언이라고 써져있는 글귀를 가리키면서

"봐봐. 묵언! 쩝쩝거리지 말고 숟가락 젓가락 소리도 내면 안돼. 떠들면 더 안되고! 그리고 다 먹은 접시 설거지는 스스로 하는 거야."


묵언이라는 글귀 앞에서도 엄마의 속사포 잔소리 랩은 멈출 줄 몰랐다. 랩은 정갈하게 놓인 음식들 앞에 서서 작은 손으로 집게로 반찬을 뜨던 아이들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나물도 뜨고 음식을 골고루 떠야 하는 거야. 음식을 차리는 정성까지 생각하면서 먹어야 하거든. 그... 그런데, 거기! 콩고기 가스는 하나만 뜨고 소시지는 세 개 이하만 먹도록 하자."


어린이 법회의 어린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소시지와 콩고기 튀김을 해주셨는데 아이들이 소시지와 콩고기 튀김으로만 그릇을 채울까 봐 조바심이 일었던 엄마는 마침내 속삭임마저 잃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호들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눈치껏 접시 위에 여러 반찬들을 조금씩 먹을 만큼 담고 있었거늘.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따로 만들어주신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으면서 흡족해했다. 달고 짠 인공 조미료 하나 없이, 고기도 없이 기름이 뜨지 않아 국물이 맑던 미역국 앞에 '나 이거 먹기 싫어, 안 먹어' 여느 날의 편식도 없었다. 심지어 들기름에 볶은 표고버섯도 오물오물 잘 먹고 있었다. 편식도 비켜가는 발우공양 특수라니.


채근 한번 없이 그릇 위의 음식들을 비운 후 아이들은 스스로 설거지를 한답시고 총총거리며 그릇을 들고 갔다. 그런데 이내 아이가 울먹울먹 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싱크대 높이에 겨우 닿는 아이의 키로 설거지에 나선 아이들이 사뭇 짠했는지, 귀여운 마음에 도와주려 했는지 대신 설거지를 자처하며 아이들의 그릇을 받아 든 보살님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 설거지하고 싶었는데!"

울먹이는 아이 앞에 조용히 내 앞의 그릇들을 내밀었더니 금세 화색이 돌았다. 아이는 그렇게 꼿발을 딛고 설거지를 한 후 씻은 그릇을 엎어놓고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정리하고 돌아왔다. 아이에게 딱히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오관게를 읊어댄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는 충분히 발우공양 시간 동안 무엇 하나 낭비되지 않도록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스스로 깨우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의 대견함 모습에, 자극적인 맛 일체 없이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려 계절의 흐름에 맞게 꽉 채운 공양간 사찰음식 속에서 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해졌다.


아이들을 잘 단속하고 싶다는 마음에 어린이 법회에 데리고 갔다가 절 안에서의 아이들 의젓한 뒷모습에서 도리어 깨우침을 얻고 나온 기분이었다. 아이들 뒤꽁무니를 졸졸 좇아 다니면서 어른들의 눈높이와 기준에서 속사포 랩을 쏟아내며 사사건건 종용하던 건 내가 아니었던가. 아이들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이의 사소로운 결정을 존중할 줄 아는 수양이 필요한 건 어른들이 아니었나. 아이들에게 차분함을 가르칠 목적이 아니라 돌봄에도 절제의 미학이 필요한 어른들이 법회에 참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린이 법회와 발우공양 시간 속 아이들은 이미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하고 그 안에서 답도 찾아가고 있었으니까. 선재스님의 책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서 '내 몸은 내 것이면서 또 내 것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처럼 자연의 일부로 더불어 살아간다.'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낳았다고 해서 내 것도 아니건만 내 아이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방식대로만 다그쳐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인공색소나 첨가제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려 최소한의 조리법으로 담아내는 사찰음식 요리법은 아이들을 잘 길러내는 데도 필요한 지혜가 아닐는지. 잘 길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지나쳐 오히려 줏대를 잃고 연약해진 부모의 방식에 휘둘리는 건 이미 단단하게 여물어가고 있던 아이들이 아닐는지.


절에서 나오는 길에 "이제 엄마 마음대로 절에 가자고 안 할게! 절에 오기 싫으면 말만 해!"물었다. 손사래를 치며 절에 또 오겠노라고 다짐하는 아이들이 해맑았다. 앞서 뛰어 내려가는 아이들 뒤로 걷는 내 뒷모습은 어린이 법회 시간 이후 조금 더 성숙해져 있었을까. 부처님은 모든 중생에 불성(佛性, 부처님의 성품)이 있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는 내 안의 불성도 바르게 유지되고 자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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