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찐 계란을 목욕탕에서 드시지 마오

목욕탕 찐계란 대환장 파티

by 김여희

목욕탕에 도착해 발가벗은 채로 목욕탕 자동문 앞에 다 닿으면 '핸드폰 반입 금지'라는 문구를 마주하게 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들어가는 목욕탕 안에 핸드폰을 무슨 수로 가지고 들어갈까냐마는. 하지만 심지어 맨몸으로도 견디기 힘든 사우나 안 고열 속에서도 간혹 핸드폰은 울어댄다. 온탕, 열탕 말고도 도처에 물기가 서린 목욕탕 안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올 때면 여기저기서 목이 뚤레뚤레.


"시방 저것이 내 폰인가? 내 알림음이랑 똑같은데."


두 번째로 마주하게 되는 안내 문구는 '온탕/ 열탕에 들어가기 전 자기 몸 씻기'다. 혼자 홀연히 누리는 목욕탕도 아니니 탕에 들어가기 전, 머리를 감고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두르고 자기 몸에 비누칠 정도는 하고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언데...... 굳이 그런 것까지 안내 문구로 부착해놔야 하는 것인가 싶지만. 냅다 온탕, 열탕으로 직행하는 이도 있나 보다.


몸을 정갈히 하고 비로소 탕에 들어가면 세 번째 안내 문구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건 바로 '탕 속에서 음식물 섭취 금지' 문구다. 하악하악 들숨, 날숨을 쉬어대기도 힘든 마당에 40도, 50도 뜨거운 물이 넘실넘실 거리는 물 안에서 비단 무슨 음식물을 먹을 수 있단 말이오. 하지만 탕에 들어가 앉아있다 보면 곧이어 목욕탕 매점 이모가 쟁반 한가득 음식을 내어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곧이어 목욕탕 안은 구운 찐 계란과 얼음 동동 시원한 커피의 온정이 오가는 맛집 현장으로 탈바꿈된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내 손이 무색하게끔.


어느 날 뽀얀 흰 살로 아장아장거리던 꼬꼬마손님들이 엄마들을 따라 목욕탕에 들어왔다. 탕에 들어선 아이 엄마는 혼자서는 탕 안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 아이를 한 팔로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 찐 계란을 깠다. 동네 친구로 보이던 다른 엄마도 역시 한 팔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론 양푼에서 국자로 얼음 동동 커피를 컵에 배분하였다.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 눈동자는 길을 잃었다. 한 팔로 안은 아이가 행여 떨어지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아이 엄마 손 안, 찐 계란 속에서 흰자를 비집고 나온 노른자 부스러기가 다이빙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쟁반 위 양푼 한가득 커피가 균형을 잃고 탕 안으로 떨어져 아메리카노 탕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이 모두가 나의 기우였다. 익숙하고도 능숙한 솜씨로 찐 계란은 매끄럽게 까졌고 커피는 적절한 얼음과 함께 개인컵에 담겼다. 그리고 다 깐 찐 계란은 아이의 작은 입 안에 맞는 사이즈로 쪼개져 아이 입 속에 넣어졌다. 나눠진 다른 찐 계란 조각은 온탕 안 다른 한 편, 아이 엄마의 품 안에 꼬물거리던 다른 아이 입 속에 잘 전달됐다. 계란이 배달되는 동안 또 계란 노른자가 튀어나와 기어코 잠수를 감행하는 것이 아닌지 싶어 내 눈은 찐 계란의 행방을 열심히 쫓고 있었다. 목욕탕 안엔 나 말고도 다른 이들도 있었기에 누구라도 "님아 제발 찐 계란을 목욕탕 안에서 먹지 마오." 용기 있게 한 마디 하며 '음식물 섭취 금지' 문구를 가리켜주기를 바랐다. 누군가 헛기침을 하였다. 마침내 우리들 중 바른말을 할 줄 아는 용자가 나타나는 것인가.


"이모! 여기 아가들에게 초코 우유 각각 한 개씩, 부탁해요!"


행여 목이 멜까 걱정한 누군가가 꼬물이들에게 초코 우유의 달콤함을 하사하는 훈훈한 광경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쓴소리를 내뱉는 인심 없고, 온정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둥둥 떠다니던 찐 계란 조각들과 계란 껍데기 부스러기들을 눈으로 좇으며 둥글둥글 함께 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왔다. 찐 계란 조각들의 단백질과 계란 껍데기 부스러기의 영양가가 뜨거운 물속에 녹아들어 이 또한 몸에 좋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들과 함께.


청결하고 고요하기를 바라는 건 대중목욕탕에서 비현실적이고도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인 걸까.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넘쳐나고 그 가운데서 찐 계란이든, 커피든, 식혜든 온정이 오가는 왁자지껄 목욕탕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소소한 행복 일상 한 자락인 걸까. 대다수가 주도하는 목욕탕 속 분위기 속에서 나는 예민하고 까칠하며 까탈스러운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헷갈렸다. 탕 안에서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빠져들기를 원했던 소망을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그래, 평온을 기대했더라면 호텔 스파에 가서나 바라야지' (호텔 스파는 사정이 조금 다를까?)


그러던 어느 날 오물오물 찐 계란을 드시며 아메리카노로 치얼스를 나누시던 할머니 한 분께서 컥컥거리시더니 목욕탕 안에서 쓰러졌다. 웅성웅성한 가운데 누군가는 찬물을 한 바가지 떠와 할머니 얼굴 위에 찌끌었고 누군가는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댔다. 카운터에서 사장님도, 매점 이모도 들어오셨지만 그 누구도 119에 신고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듯 보였던 할머니는 컥컥하시더니 이내 찐 계란을 비롯하여 구토물을 목욕탕 안으로 흘려보냈다. 흰자와 달걀 껍데기가 동동 물 위를 떠다닐까 봐 조마조마하던 걱정을 가까스로 내려놓았더니 급기야 할머니의 목 옆으로 쏟아지는 구토물을 보게 된 것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발 빠르게 빈 바가지를 대령해 할머니에게서 구토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옴메 다행이네 다행이야. 그러게 언니는 찐 계란 먹지 말라고 했잖아어. 그전에도 두 번이나 그랬으면서! 조심해야 혀."


환장할 노릇이다. 찐계란을 먹다 못해 구토물을 쏟아낸 게 이번이 세 번째라니. 그제야 119에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들 깨어난 할머니에게 다행이라는 말을 건네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놀람과 황당함이 새어 나와 나는 또다시 내가 매정한 사람인 건가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욕탕 안에서 찐 계란과 매실차, 식혜, 커피 등의 다과거리를 판매 금지시키면 당장 매점 이모의 매출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란 말인가. 반성이 매점 이모의 매출 걱정으로 옮겨져 또 다른 걱정을 낳았을 때 내 옆에서 조그맣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목욕탕에서 애초에 음식을 안 드셔야지. 한두 번도 아니고."


그 목소리가 온탕 밖을 넘어섰으면 좋았으련만 딱 옆자리에 앉은 내 귀에만 들릴 정도였다.

'네 번째 구토는 없길 바라는 수밖에.'


쌍둥이들에게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에"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여 다른 사람들에게 쌍둥이의 행동이 방해가 될까 싶어 더 예민하게 굴었다. 미연에 방지하고자 미리 통제하고 오히려 아이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금지가 빈번한 엄마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구속이 될까 봐 걱정했다.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야.' 오은영 박사님과 조선미 교수님의 음성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들면서 위안 삼았다.


오은영 박사의 감정 조절 육아법이 담긴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책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되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말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지침은 단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데다 안전을 위해서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찐계란 대환장 파티를 주도하는 어른들과 어르신들은 공공장소의 예절 따위 내팽개친 걸까.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까지 감수하면서 굳이 찐 계란을 먹어야 하는 걸까. 구토물이 둥둥 떠다니던 온탕에서 대피해 열탕 속에서 다리를 담그고 있으면서


'우리 애들 간수나 잘해야지. 다 큰 어른을 무슨 수로 바꿔.'


혼잣말을 하고선 씁쓸히 목욕탕을 나왔다. 안내테스크에라도 말을 해야겠다 싶어 전했더니


"님아. 속 모르는 소리 하지 마오. 어찌할 방법이 없소."


답답해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우리 동네 최애 단골 목욕탕 앞에 119 구급차가 출동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모두가 안녕한 대중 목욕탕이 되길.


집에 도착해서 내 말이 그나마 먹히는 아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 지켜야할 에티켓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목욕탕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목소리 앞에 아이들의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오늘 말이야..." 로 시작해서 "안되는건 안되는거야."로 끝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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