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ai 없이도 길을 잘 읽어내는 아이들

인스타 브레인

by 김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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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에서 국경을 넘어 오만의 소도시를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신밧드의 나라 오만으로 떠나는 여행! 하지만 실은 와이파이가 잘 연결되지 않는 나라에서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할 때가 많았던 자동차 여행이었다. 해남 땅 끝에서 강원도까지 우리나라도 차로 여행해 본 적도 없는 사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도, 시시때때로 잘못 접어들어 돌아가는 일이 허다한 사람. 영화를 보다가 300만 달러라는 자막이 나오면 머릿속으로 바로 계산이 되지 않아 기어코 계산기를 찾아드는 사람의 무모한 여행.


오만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빈약한 거리 표지판에 의존한 채 방향을 파악하고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건만. 조수석에 앉아있는 것 또한 곤욕이었다. 친구가 운전대를 잡을 때면 옆 좌석의 지도에서 방향 읽어내고 축적을 바탕으로 거리를 계산해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숫자에 유독 약한 나에게 그렇게 어려운 과제를 줬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깨알 같은 글씨로 아랍어와 영어로만 표기된 지도를 한참이나 들여다다. 축적과 방위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는, 앞으로 남은 거리를 종용하는 말에 차마 모른다는 말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그때의 여행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박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핸드폰 내비게이션 앱 없이 20km도 운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금.


아니나 다를까, 최근 핸드폰을 두고 밖으로 나와 한없이 움츠러들었던 적이 있다. 핸드폰이 없던 몇 시간 동안 길 잃은 아이처럼 방황했고 두려워했다. 십수 년을 살았던 도시인데 핸드폰과 내비게이션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떨 일인가 싶으면서도. 런던의 택시 드라이버들은 2,000개가 넘는 런던의 거리들과 5,000개 이상의 장소가 담긴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던데... 디지털 시대에 하루 종일 운전을 업으로 삼는 택시드라이버들에게 아날로그 시대의 작업 방식을 강요하는 게 과연 효율적일까마는. 지독하게도 까다로워 심지어 지식 Knowledg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택시면허시험을 통과하는 런던 택시드라이버들의 뇌 기억 저장소 해마 크기가 커진 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마는. 비단 내비게이션 앱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핸드폰이 없으면 길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하는 내 뇌의 해마 크기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


정작 핸드폰 없이 길도 잘 못 찾고 핸드폰이 없으면 극도로 불안해하는 사람이면서 아이들에게 핸드폰 없이 초등학교 생활 2년을 보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제 3학년이 되었다. 그렇담 '너희들은 핸드폰이 없이 아날로그 속 자유를 만끽하라'였을까? 아니다. 아이들이 길을 제대로 찾아가기나 할까, 위험한 사람이 접근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하며 아이들의 동선을 2년 넘게 좇아 다녔다. 수영장 앞에 아이를 내려줬다가 다시 태우고 태권도장 코 앞에 내려주고. 태권도장에서 피아노 학원까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 그 길을 함께 걸었다. 두바이에서 국경을 넘어 오만의 소도시들을, 캐나다에서 국경을 넘어 미국 동부를 자동차로 달렸던 사람이. 왕복 20분 컷인 작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봐 종종종종. 아이들이 위험할까 봐 종종종종.


휴대전화의 가장 큰 여파라면 우리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우울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몸을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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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복잡 다난한 런던의 골목을 외우고 다닐 정도는 아니더라도 내가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만이라도 스스로 익히고 다니자 싶어서 요샌 운전 중에 핸드폰을 내려놓는 때가 늘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자주 다니는 길만큼은 아이들이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맡게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길이어도 가끔 아이들에게 묻는다.


“세 갈래의 길이 나왔습니다! 앞에 표지판이 보이네요. 목적지인 노대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쪽 길로 가야 합니까? 왼쪽 길입니까, 오른쪽 길입니까! 아, 오른쪽 기이이일!"


복면가왕 아나운서 톤으로 중계하듯 목소리 톤을 높이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제법 능숙한 안내자가 되어준다.


“직진하다가 우회전해야 합니다! 노대동은 우회전, 진월동은 직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길을 읽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설렘이 싣린다. 자주 다니던 그 길을 기억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운전하는 엄마에게 똘똘한 안내자가 되어주고 있다는 성취감이 배어있달까. 매번 부모님이 정한 목적지에 당도해서 내리라고 하면 내리고, 학원차가 데려다주는 길 끝에서 수동적으로 내려 른들의 손 끝이 향하는 문으로 들어가던 아이들은 점점 적극적으로 길을 탐색하는 사람이 돼 가고 있다. 덩달아 해마 뒷부분인 후위 해마도 성장하면서 공간 지각 능력도 발달되지 않겠나. 길을 읽어내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핸드폰 속 내비게이션 앱이라는 믿음 속에서 아이들의 뇌가 매번 가는 그 길 앞에 심드렁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길 위의 표지판을 읽고 어떤 길이든 오감으로 길을 읽어내는 것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스킬이 아닐까 싶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보여주고 인공지능 ai가 방향을 읽어줘도 아이들이 컴퓨터와 핸드폰 등 디지털 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인생의 길 위에서 만큼은.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ai를 모르면 앞으로의 인생에 답이 없습니다."식으로 불안에 몰아넣는 것만 같은 인스타 피드들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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