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테크 대신 책테크 에코백

학부모 독서회에 가입했습니다.

by 김여희

https://brunch.co.kr/@yoloyoll/169

딱 1년 전 오늘, 백테크, 근테크 (명품백 대신 잔근육을 모읍니다)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그로부터 1년 후의 글로, 호기롭게 다짐했던 2024년 9월 3일에의 백테크 사정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 차, 점검 차 쓰는 글이다.


야심 차게 명품백 대신 근력량을 늘리겠노라 다짐했건만. 학부모 설명회와 공개수업 등 학교 행사 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져서... 행사가 있던 어느 날엔 동생의 명품백을 떠올리게 했다. 내면의 결핍은 사람을 더욱 치졸하게, 천박하게 내몰고 갔다. 옷장 속_상자 속, 더스트 백 속에 겹겹이 쌓여 일 년 내내 잠에 취해있던 동생의 명품백들. 동생이 독일까지 명품백들을 짊어지고 가진 않았을 테니 고이 잠들어 제 값만큼의 쓰임을 못하고 있겠지! 못난 자존감에, 머릿속에 나쁜 느낌표가 번뜩인 거다.


(너도 박스를 벗어나, 더스트백을 뛰쳐나와... 이목을 끌고 싶지? 아가야. 내 너를 잠깐 깨워서 잠시 고이 메어주마. 딱 1시간만큼만 내 어깨를 빛내주다 다시 잠들면 되지 않겠니?! 너도 네 밦값이란걸 해야 하지 않겠니. 자그마치 어마어마한 몸값.....)


어느 찐 자매 일상 브이로그에서, 동생이 언니 옷을 몰래 착장하고 길을 나섰다가 집에 들어와서 흠씬 맞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일단 언니를 흠씬 때릴 동생도 없고. 우리 자매 사이엔 그 이상의 돈독함이 흐른다 생각되었으며... 독일에 있는 동생이 모르는 사이, 아주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딱 1시간만큼의 가방 외출인데 언니의 위신까지 져버리면서 동생에게 허락을 구해 외출권을 끊고 싶지 않았다. 외박권도 아니고 1시간 이용권이라면. 하지만 옷장 문을 열기도 전에, 불손한 의도로 접근하는 큰 딸의 수상한 걸음걸이로 짐작한 것인지... 본인의 명품백은 하나 없어도 기막히게 비싼 아이템들은 알아보는 매서운 안목을 가진 엄마에게 걸리고 말았다. 엄마는 사십 년 이상 봐온 큰 딸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를 잘은 몰라도 그 옷장 구역은, 마냥 성스럽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엄마도 알았을 테다.


그냥 얼른 가...!


명품으로 자기 정체성 구현해 보려던 못난 시도는 엄마의 제지로 무산되었다. 비루하게 끝났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너의 소중한 가방을 자매의 흑심 어린 손으로부터 지켜내었다)_ 의기양양하게, 살뜰히 독일에 알리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기어코 난 동생에게서 자존심 상할 말까지 들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체면 구기는 일이었음에도 내가 얼마나 못난 자존감의 사람인지 확인 사살까지 당한 것 같아 심술이 났다. 씩씩거리며 내 옷장 속 철 지난 가방을 꺼내어 들고 아이 '초등학교 공개수업'엘 갔다.


화려한 옷과 백의 라인업들이 패션쇼장을 방불케 할 만큼 펼쳐졌다. 학교 행사를 앞둔 시즌이 되니 인스타그램에선 "고급스럽게 보이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학교 행사 학부모룩 베스트 5" 영상이 돌고 있던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각자 지향하는 바는 똑같은 것 같았다. "있어 보이는 것들"의 향연이었다. 그런 대외적인 것들 말고 나의 잔근육들이라도 어찌어찌 빛을 발해주면 내 속이 좀 나으련만. 고르고 골라 "꾸안꾸" 패션을 완성했던 나의 큰 그림은 라인을 여실히 드러나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자랑할 잔근육도 딱히 없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던데 딱히 기대할 바도 아니었다. 몇몇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넘어갔고 물광피부로 변신해 볼 메이크업 테크닉도 없었으니까.


5월은 10주년 결혼기념일이 있던 가정의 달이었다.

10주년 기념일을 명분 삼아 결혼 때 혼수로도 하나 장만 못했던 명품백과 팔찌, 귀걸이 등의 주얼리 템이라도 장만해볼까 싶었지만. 혼수 때 장만 못하면 영영 배짱부릴 만한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던 결혼 선배들의 조언만 씁쓸하게 확인하고 말았다.


어느 날 화점에 함께 가자던 친구의 말에,


(난 칠칠맞아서 귀걸이 같은 거 관리를 못해. 많이 잊어버렸었어. 팔찌는 걸리적거려서 안 차. 카페 바닥에 가방 내려놓는 거 싫어서 가방도 안 가지고 다니게 되더라.)


묻지도 않은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래, 그게 뭐라고. 난 그런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고결한 품격을 지닌 여자야!!!!!


소리치고 싶었지만. 독립적으로 내리고 싶었지만. 어엿한 주체가 되지 못했다. (최근에 '애마' 시리즈에 푹 빠져서 당당하게 말을 타고 달리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게 누군가의 추천으로 학부모 독서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말이 학부모 독서회지... 기 세고 말 많으신 (한 딱까리 하는) 어머님들의 결정체라던데요.


독서회에 들어가기도 전에, 내게 우려의 목소리로 조언을 내어놓던 동네 엄마들이 여럿이었다. 하지만 막상 학부모 독서회에 들어가게 되니 나는 이제 또 '주눅 들지 않기 위해', '있어 보이고 싶어' 완독을 꾀하는 사람이 되었다. 허영심이 참으로 한결같다. 하지만 숙제처럼 시작했던 독서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책에의 열망을 일깨워 나를 달리게 했다. 책에서 흠모하는 문장들을 찾아내었고 문장수집가가 되어 모은 글들로 위안을 얻게 했다. 대단 독서가가 되어 독서력과 문장력을 쓸어 담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읽는 사람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동네 엄마들과 사소로이 카페에서 모이게 된 자리에서 누군가 140만 원짜리 에르메스 슬리퍼를 인증했다. 나 말고 모두가 서로 친한 사이였던 터라 서슴없이 신어 보기도 하고 둘러보고 하던데... 난 멀찌감치 보는 듯 안보는 듯 힐끗거리며 빨대로 음료를 쪽쪽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뒤늦게 도착한 학부모 독서회 회장이 둘러메고 왔던 백팩을 내려놓더니


"야, 140만 원짜리 슬리퍼가 신어지냣?!"


우스갯소리로 한 마디 했다. 이내 그녀는


"H? 에르메스가 아니라 헤지스인 줄 알았다!"


서슴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친한 사람들끼리 격의 없이 나누는 말이었지만 백팩 속에 책을 한가득 짊어지고 와서 유쾌하게 말을 내뱉는 독서회 회장님은 내 눈에 내면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 같았다. 이내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더니 오늘은 다른 독서회에서 이 책으로 모임을 했었노라며 부담스럽지 않게 책 이야기를 꺼내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일상은 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걸 아는 것 마냥.


백테크를 딱히 다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명품에 의연하지도 않았던 1년. 나는 이제 백테크 대신 책테크를 다짐한다. 1년 후에 다시 글을 쓰면서 통장에 얼마만큼의 독서이력이 쌓였는지 소소하게나마 인증을 할 테다. 명품으로 안목을 자랑하고 희소한 아이템을 소비할 수 있는 집단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닌, 지적 허영심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독서로 단단해지는 사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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