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성공이 끝이 아니었군요

쌍둥이 초기 임신

by 김여희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혼하기로 결정했던 우리는, 고점을 찍고 있던 호르몬 수치에 얼싸덜싸 모드가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 뜻밖의 결과지. 일타쌍피 一打雙皮. 쌍둥이 임신이라니. 그간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천연덕스럽게 받은 응답에 웃음이 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기분 좋은 쌍둥이 임신 소식이었지만 그만큼 더 큰 초기 유산 위험을 감내해야 했다. 최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임신하는 경우가 늘면서 고위험 임신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로선 다태 임신이 주는 고위험 가능성까지 더해진 상황. 쌍둥이 등 다태아는 저체중과 조기 분만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산모에게는 임신 중독증과 산후 출혈 증상이 3배 정도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이러나저러나 안정될 때까지 난임 병원은 졸업할 수 없었다. 출산까지 해야, 비로소 난임 탈출.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다시 난임 학교 입학이었다. 이제는 여유 좀 부려보나 했는데... 임신이라는 큰 고개를 하나 넘고 나니 또 다른 과제를 내어주던 난임 병원학교였다.


‘어디 한번 잘 견뎌봐라. 착상 단계는 통과다.’


시험관 시술로 인한 다태임신이 아니더라도 출산에까지 이르기 위해 넘어야 할 고개가 많았다. 정기적인 산전 관리를 통해 자신의 임신 주 수와 개별 상황에 맞는 세심한 관리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검사 항목들을 보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식 성공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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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느리게 흘렀다. 이식만 잘되면 잔잔해질 거라 생각했던 마음은 여전히 분주했다. 몸은 응당 겪을 수 있다는 증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겪겠다는 태세로 격하게 반응했다. 과배란 주사에 저반응군이었던 몸은, 입덧 앞엔 고반응군. 차디 차던 몸은 처음으로 37도 이상을 웃돌았고 트지 않았던 방귀를 과감하게 트게 만들었으며 시시때때로 화장실과 주방을 들낙거리게 하고 있었다. 먹고 눕고 배출하고 또 채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급기야 또 피를 보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피의 선홍빛은 온갖 증상을 감내하던 인내심에 한계를 가져왔다. 결국 이른 아침 병원으로 향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서 단단히 여무는 날이 왔으면 싶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리스펙트'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3월 11일, 투명한 강낭콩 모양이 올망졸망이던 배아 2개를 보았다. 내 자궁 안에 아기집을 두 개 틀고 저마다의 점을 찍고 앉아있었다. 노심초사 예비엄마와 달리, 평화로웠다.

엄마, 우리 둘이 손잡고 걸어오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어.

1년 반 넘게 애달프던 애미 심정은 모르고 태연하게 저마다의 영역을 확보하던 중이었다. 우선 초음파로 마음을 달랬다. 수액으로 놀란 가슴을 위로했다. 뚝뚝 감질나게 떨어지는 수액 방울만 하염없이 세알렸던 한 시간 동안 두 녀석 배아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사실 내 눈에도, 다른 사람 눈에도 안보이던 배아들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덧 따위 백만 번 해도 괜찮아. 제발 피만 보지 말자.’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 저녁엔 적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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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망망대해 어디 즈음 혼자 떠다니는 느낌이다. 속이 비어도, 속이 채워져도 메스꺼움은 마찬가지였다. 기분으론 정말 입덧을 백만 번 한 듯한 느낌. 차라리 '채움'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공복 상태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속이 미식미식 꿈틀거렸다. 그러다 뭔가를 채워 넣고 나면 이내 잠이 쏟아졌다. 먹고 자는 하루 시간표 사이사이로 빈번하게 입덧이 오갔다. 대체 소화는 언제 시키는 건지. 그러나 다시 배가 고파지는 걸 보면 어디에선가 소화가 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어느 포인트에 다다르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해야 하는 절정의 순간이 왔다. 변기를 부여잡고 노란 위액을 쏟아내고 나니 눈물이 찔끔 났다. 입덧이란 정말 아이러니한 녀석이었다. 새콤아삭한 비빔국수를 그리워하다가도 물과 두유 등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게워내게 했다. 토덧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일상이 반복되자 물조차 마시기 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독한 입덧 속, 간혹 멀쩡한 순간에 다다르면 그동안 잠재웠던 식욕을 마음껏 발산했다. 낮엔 입덧과 토덧, 먹덧을 오가다 밤에 이르면 불면증이 찾아왔다. 어느 밤, 읽고 있던 책은 '생각을 여는 그림'인데 좀처럼 생각은 열리지 않고 잠은 오지 않아 괴로운 밤. 그런 밤들이 많았다.


어서 잠이라도 들게 해 주오.


그토록 메이고 싶었던 임신 밧줄이었는데 보름달이 차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녹록지가 않았다. 메이지 않았을 때보단 행복한 것임에 분명했지만. 7-8주 정도에 정점을 찍었던 토덧은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지만 중간중간 피 비침이 있었다. 하루하루 조마조마했다. 토를 열 번하는 한이 있더라도 피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10주 차 어느 날, 하혈 모드가 되었다. 10주 3일. 언제쯤 안정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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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라고 한다.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고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게 있다 했다. 100주는 더 기다려 가까스로 아이들을 만났는데 10주가 이렇게도 길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난임 기간 때보다 더 애가 탔다.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아깝게 놓쳤던 때가 빈번해서였을까. 매일 아침, 임신 어플을 통해 바뀌는 태아의 캐릭터를 보며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태아들의 상태라 해봤자, 늘 양수 속에서 데굴데굴과 꼬물꼬물 사이였다.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며 부풀렸던 희망이 하루아침에 푹 꺼져 쪼그라들까 싶어 무서웠다. 아기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임신된 이후로 가장 많은 혈을 보니 나조차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늘 그렇듯 집에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피 비침으로 이미 한 차례 입원, 두 차례의 진료를 경험했던지라 망설여지던 병원행.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 피고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일단 입원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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