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있던 동생의 발 사진. 수면양말까지 신고서 이불을 푹 눌러쓰고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찍었다.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지만 내 눈엔 아직 어려 보이는 동생이었다. 자는 동생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킥킥거렸다. 그런 동생이, 아기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어려 보이기만 했던 동생이 이제 엄마가 된다고 한다.
동생은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왜 내게 뜸을 들였어야 했을까. 이렇게 축복스러운 일에 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함께 전할 수밖에 없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는데 수 분이 걸렸다. 도리어 미안해졌다. 그리고 우린 조금 어색해졌다. 아니, 나와 친정 가족들 모두가. 결혼하기 전, 여느 보통날처럼 친정집 거실 바닥에 세 자매와 엄마가 다 같이 누워서 수다를 떨고 즐거워하던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을 뿐인데... 이 소식을 기점으로 형언하지 못할 애매한 공기가 흘렀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주섬주섬 집을 나왔다. 친정집 현관문을 닫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분명, 난 괜찮았는데... 혼자가 되니 착잡한 심정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이벤트처럼 온 선물에 질투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나보다 먼저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 응당 들려와야 할 동생의 임신 소식이기도 했는데... 난임으로 마음고생하던 못난 언니는, 애먼 곳에서까지 감정이입을 하는 중이었다.
멀게 돌아가는 내 길이 새삼 슬퍼졌노라며. 찌푸려지는 미간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발라드 노래 대신 힙합으로 노래를 돌리곤 꽃 수업에 갔다. 터널같이 어둡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길이어도 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걸어야 하지 않겠냐며. 모르고 가는 길은 원래 돌아오는 길보다 멀게 느껴지는 법이라며.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길도 결코 먼 길이 아닐 거라고 위로하며.
# 분노와 자책감 사이 구간
친정집으로 다시 돌아온 내게, 친정엄마는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분명 내 침체된 기분을 감지하고 어렵게 준비한 말이었을 테다.
‘가까운 누군가가 아가를 가지면 삼신할머니가 질투해서 임신이 되기도 한 대.’
‘엄마! 쫌!!! 그거, 미신이잖아!!!’
또 엄마가 무슨 죄라고. 임신을 못해 슬픈 딸 하나와 임신을 해서 미안한 딸 하나 사이에 난감한 엄마가 있었다. 그 뒤엔 위로하지도, 마음껏 축하하지도 못하던 막내딸이 애매하게 서있었다. 엄마에게 앙칼지게 한 마디 내뱉고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날 나는 아기처럼 몇 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
'조카야. 그때 널 마음껏 반기지 못해서 미안해.
이모 마음이 그때는 그랬어...'
난임 일상이 시작한 뒤로 내 마음 상태는 늘 롤러코스터를 탔다. 하지만 희망에서 실망까지, 절실함에서 자포자기 심정까지... 매번 극에서 극에 달하는 감정 사이를 오가다 보니 제법 굳은살이 베긴 모양이었다. 여전히 감정은 빈번히 롤러코스터 위였지만 예전처럼 크게 기대하지도, 깊이 아려하지도 않았다. 5번째 병원이었던 광주 병원엔 수다 떠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녔다.
몸의 긴장도, 마음의 스트레스도 모두 툭_ 늘어뜨려놓아서 그랬을까. 공난포의 공포마저도 잊고 무심하게 임했던 채취의 날에, 한 개의 난자를 허락해주었다. 내친김에 냉동보관까지 인심 써줬다. 그렇게 연거푸 두 달이나!
광주 5번째 병원의 의사 선생님 방 곳곳에 꽂혀있는 여행사진들을 눈으로 훑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어서였을까. 그간 간절함을 담아, 운동삼아 108배를 하며 기도했던 탓일까. 아님, 엄마 말대로 조카의 임신에 질투한 삼신할머니의 공일는지... 매번 실패만 거듭하다 난자를 채취하는 날을 맞이하고 보니 난자를 채취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걱정은 제가 합니다’ 차갑지 않고, 화려한 언변으로 따뜻하게 위로하지도 않던, 그저 이수동 시인의, 동행 속 나무와 같던 의사 선생님 덕분인 걸까. 별생각 없이 무덤덤하게 임하다가 대뜸 예상치 못했던 답변을 하나 받으니 대단한 러브레터라도 받은 듯 다시 설레어졌다. 그리고 꽃을 언제 틔울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점집 할머니 앞에 앉아서 물었다.
“내년엔 이식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도 모르는 결과를 점집 할머니가 아실 턱이 없었다. 얼떨결에 얻은 난자 두 개에, 사주 보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 엉뚱함에 실소가 나왔다. 그래도 지난번 방문 때보다 한층 희망적으로 변했다며 다독거렸다. 지난번엔 할머니께 “제 사주에 아이가 있나요?”여쭤봤는데 말이다.
점집에 가서 길을 묻는 것, 그리고 답을 찾고 싶어 하는 건 결국 자기가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서일 테다. 긍정의 기운이라도 얻고 싶음이거나. ‘앞으로 괜찮다’라고 하는 위안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지나가는 누구에게라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거나. ‘정확히 맞지 않아도 좋아요. 아주 믿지는 않으니깐요. 그래도 듣고 싶었던 말은, 있어요.‘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아시는지 할머니에게서 “사주에, 아이가 둘 있소. 내년에, 따뜻해질 때쯤 이식해보시오. “ 답을 주셨다. 수정란 2개도 아니고, 아이가 둘이라니. 정말 아이 둘을 임신이라도 한 마냥 설레는 기분이었다. 연신 웃고 나오는 걸 보니, 맞든 틀리든 2만 원 이상의 할머니 마법이었다. 일본 영화 '안경'에서처럼,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좋은 바다 앞에서 사쿠라 할머니가 내어주는 빙수 한 그릇 시원하게 먹고 나온 기분이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80m 더 가서 오른쪽.’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라도 받아온 기분이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수정란 2개 이식해볼 것.’
0.0.0.0 몇 달 동안 난자 채취 공난포로만 기록하다 9월, 10월에 한 개씩에 이어 11월에 2개 수정란 획득으로 냉동 창고가 처음으로 활기를 띄었다. 점집 할머니의 조언대로 ‘꽃피는 봄’을 일부러 기다렸다가 이식을 해보자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몸에 찬 기운이 더 도는 겨울보단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기다렸다 이식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창고에 든든하게 식량을 비축해놓은 든든함으로 겨울을 여유 있게 보내보마 싶었다.
‘최대한 단순해져라. 그럼 당신의 삶이 놀랍도록 평온해질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모두들 알게 될 거야.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서의 대사처럼 최대한 단순해진 일상 속에 평온함만을 찾기로 한 겨울이었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세계를 구경하는 거야. 그저 두려워하지 않으면 돼.’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에서의 대사처럼 더 많이 웃고 사랑하기 위해, 백종원 3대 천왕 맛집과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지도삼아 세계 구경에 나선 겨울이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예요. 비싼 저녁 식사나 요트는 못 사줘도 매일 아침에 몇 블록을 걸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두유와 튀긴 빵을 사줄 남자.’ 내가 좋아하는 갓 튀겨 흑설탕 묻힌 꽈배기 빵에, 커피 한 잔을 사주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같이 걸어주는 남자와 난임의 겨울을 나고 있었다. 여행 중 잘못 접어든 길 위에서 툴툴거리지 않는 사람. 추어탕이나 육회비빔밥 등 식단으로 내 체질과 식습관을 천천히 바꿔주던 남편. 덕분에 든든하게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