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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Feb 10. 2021

화분 흙에 촛불 후

육아일기

마음껏 바다의 짠 내음을 맡고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알의 껄끄러움마저도
즐기던 그때가 언제인지 싶다.

마스크 없이
해먹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찡그려보던,
그 바다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하루 확진자 120명 문자로
아침을 시작하니

그간의 한 발 한 발 불안하게 내딛어온 일상들에 더 이상 무뎌지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슬펐다.

이제 마스크없이는
어떤 바다도, 어떤 휴양지에도
갈 수 없지 않을까.






독박 육아라며 툴툴거리며 보냈던 출장이
마스크 없이 갈 수 있었던
마지막 출장인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보고
더 실컷 놀다 오라고 할걸.

면세점에서 혼자 기분 내고 왔다며
타박하지 말걸.

모든 게 결과론적이지만
여기저기 후회들이 미련스럽게도 남아있다.






늘 치우는 자와 어지르는 자

그러다 치우기를 포기하게 되는 지루한 살림을 털어내기위해 꽃을 들였다.

#빅토리아시크릿장미.
한 단, 3천원의 마법.

이름이 같은, 장미 한 단 샀을 뿐인데
몇 년 전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서
속옷 착용을 도와주다
내 빈 가슴을 보며
헐거운 빅토리아시크릿 브래지어에
벌컥 손을 넣으며
고개를 내젓던 인도 직원이 떠올라
잠시 웃었다.

임신 중에, 출산 후에_잠시 차올랐던
가슴만은 여전히 한결같이 가벼운 모양새다.
풀이 죽었다.





빅토리아시크릿 장미

화병에 꽂아놓은
싱싱한 빅토리아시크릿 장미들 한편 사이에
아이가, 말려놓은 #자나미니장미 를 꽂아놨다.

화병에서 #자나장미 를 빼서
엄마는 왜 다른 곳에 두는 걸까.
원래 자나 장미 자리는 여기였는데_싶었던 걸까.

아님, 나름 꽃꽂이란 걸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이만의 꽃꽂이에,
굳이 안된다고 할 것까지야싶어
다음날 아침까지 놔뒀다.

다른 아이는 화분, 화분마다
두세 개의 초를 꽂아놨다.

자나 장미를 꽂았던 아이 1은
#주방서랍 에서 라이터를 찾아내 와
호기롭게 아이 2에게 내밀었다.

(케이크에만 초에 불 켜는 거야!)

(화분을 축하해주려고 했어...)

아이의 말에,
초를 굳이 케이크에만 꽂아야 하는 법이 있나
포근포근 화분 흙에도 초는 잘 꽂히는걸.

아이의 감성에, 한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화분 한 켠 쓸어있는 곰팡이를 발견하고선
(누가 이랬어!)
이내 다시 날카로워진다.

(남은 우유, 같이 나눠마셨어...)

다시 두 발짝 물러서게 되었다.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지만
가끔은, 아무래도 괜찮아!
말하고 싶어진다.

아이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로움도,
이 감성도,
'지금 이 순간' 뿐일 테니.
1,160일의 해맑은 감성일 테니.

나중에 11,160일이 되면
'그때 그냥 놔둘걸
왜 맨날 안된다고만 했었을까'
후회할 수도 있으니.




#육아일기

#육아일상

#감성을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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