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바다의 짠 내음을 맡고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알의 껄끄러움마저도 즐기던 그때가 언제인지 싶다. 마스크 없이 해먹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찡그려보던, 그 바다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하루 확진자 120명 문자로 아침을 시작하니 그간의 한 발 한 발 불안하게 내딛어온 일상들에 더 이상 무뎌지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슬펐다. 이제 마스크없이는 어떤 바다도, 어떤 휴양지에도 갈 수 없지 않을까.
독박 육아라며 툴툴거리며 보냈던 출장이 마스크 없이 갈 수 있었던 마지막 출장인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보고 더 실컷 놀다 오라고 할걸. 면세점에서 혼자 기분 내고 왔다며 타박하지 말걸. 모든 게 결과론적이지만 여기저기 후회들이 미련스럽게도 남아있다.
늘 치우는 자와 어지르는 자
그러다 치우기를 포기하게 되는 지루한 살림을 털어내기위해 꽃을 들였다. #빅토리아시크릿장미. 한 단, 3천원의 마법. 이름이 같은, 장미 한 단 샀을 뿐인데 몇 년 전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서 속옷 착용을 도와주다 내 빈 가슴을 보며 헐거운 빅토리아시크릿 브래지어에 벌컥 손을 넣으며 고개를 내젓던 인도 직원이 떠올라 잠시 웃었다. 임신 중에, 출산 후에_잠시 차올랐던 가슴만은 여전히 한결같이 가벼운 모양새다. 풀이 죽었다.
빅토리아시크릿 장미
화병에 꽂아놓은 싱싱한 빅토리아시크릿 장미들 한편 사이에 아이가, 말려놓은 #자나미니장미 를 꽂아놨다. 화병에서 #자나장미 를 빼서 엄마는 왜 다른 곳에 두는 걸까. 원래 자나 장미 자리는 여기였는데_싶었던 걸까. 아님, 나름 꽃꽂이란 걸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이만의 꽃꽂이에, 굳이 안된다고 할 것까지야싶어 다음날 아침까지 놔뒀다.
다른 아이는 화분, 화분마다 두세 개의 초를 꽂아놨다. 자나 장미를 꽂았던 아이 1은 #주방서랍 에서 라이터를 찾아내 와 호기롭게 아이 2에게 내밀었다. (케이크에만 초에 불 켜는 거야!) (화분을 축하해주려고 했어...) 아이의 말에, 초를 굳이 케이크에만 꽂아야 하는 법이 있나 포근포근 화분 흙에도 초는 잘 꽂히는걸. 아이의 감성에, 한 발짝 물러났다. 하지만, 화분 한 켠 쓸어있는 곰팡이를 발견하고선 (누가 이랬어!) 이내 다시 날카로워진다. (남은 우유, 같이 나눠마셨어...) 다시 두 발짝 물러서게 되었다.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지만 가끔은, 아무래도 괜찮아! 말하고 싶어진다. 아이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로움도, 이 감성도, '지금 이 순간' 뿐일 테니. 1,160일의 해맑은 감성일 테니. 나중에 11,160일이 되면 '그때 그냥 놔둘걸 왜 맨날 안된다고만 했었을까' 후회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