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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an 20. 2022

프롤로그

내게 너무 아까운 사람

30대 초반의 섬 마을 청년이 하루아침에 아스라 져갔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긴 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만의 차분함과 배려를 확인했던 차였는데... 

여전히 온화한 모습으로 주변을 챙기는 모습이라 고마웠는데...

그 모습이 내가 못하고 있는 일 중 하나라, 대견했는데...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한 달음에 달려간 길에서야, 

겉으로 보이는 근황이 아니라 내면의 안부를 확인하려 애썼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마지막에 남긴 글을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읽었다. 


그제야 궁금해봤다. 

너의 어제, 그제, 일주일 전. 

우리가 만났던 한 달 전을 너머서 너의 몇 년 전까지... 자취를 더듬어봤다.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히 섬 마을 집으로 내려오게 된 연유에 대해 상상했다. 

     





“저는 기억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게 더 좋아요. 왜 끔찍한 기억이 제일 오래갈까요?”

(빨간 머리 앤)     


거슬러 올라가 막연히 어느 지점에 다 닿으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너는 끔찍한 기억 때문에 

앞으로의 일들을 더 이상 즐겁게 상상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걸까?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아스라 져간 청춘의 너에게 이제야 말한다.     


네가 지금 얼마나 멋진 지점에 서있는지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던 터라 아쉬워서. 

그렇다고 아주 많은 날을 살아본 것도 아니지만, 

이유 없던 순간들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해줄걸 후회가 들어서.

좀 더딜 뿐이지 늦게 피는 꽃도 있더라며...

그게 ‘더러’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모두가’ 각자 피는 시기가 다른 것 같더라며_말하지 못해서.

     

너에게 턱없이 모자란 양인 줄도 모르고 

부족한 치킨과 피자를 사주던 때가 마지막 일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은 술을 따라주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걸.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 잔, 한 잔 따라주련다. 


너를 보내고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내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너의 웃음을, 배려를, 천천히 곱씹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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