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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an 21. 2022

너무 멀리 갔던 때

정신을 차리고보니, 두바이. 

어느 날, 뒤늦게라도 꿈을 이루겠다며 집에서, 학교에서, 독서실에서 뛰쳐나간다고 한 것이,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 처음에는 서울이었는데, 가다 보니 비행기만으로도 13시간을 건너 

두바이까지 가버렸어.      


한국에선, 면목은 없었지만 밤늦게 야간 버스를 타면 새벽녘엔 집에 도착해서...

그다음 날 눈치 보면서 먹는 엄마 밥이라도 있었는데...! 

두바이까지 가고 나니 엄마 밥은커녕, 한식은커녕. 

인도인 셰프가 만드는 인도 음식과 필리핀 직원들이 만드는 필리핀 음식 일색이었다. 

게 중에, 필리핀 음식보다는 인도 음식이 더 입맛에 맞아서 한껏 먹었더니 

마살라 향이 몸에 베인 것만 같았어. 

영어도 못하는 인도인 셰프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인도 음식을 잘 먹는 한국 여자아이가 신기했는지 음식을 엄청 줬었거든. 

국적을 막론하고 요리를 하는 사람에겐, 그저 잘 먹어주는 사람이 고마운 모양이다.

나의 먹성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모양이었다. 

셰프 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더 다채로운 요리를 선보였으니. 

커리와 치킨 티카, 탄두리를 벗어나 요리가 점점 더 인도 요리의 정점에 다다르니 

난 좀 입맛이 사라졌지만!     


다양한 주거 형태란 서울에서도 이미 경험해봤다 생각했지만 

서울의 고시원, 다세대주택, 반지하 오피스텔과는 또 다른 주거형태에 직면했다. 

서울에서도 이미 겪어볼 대로 겪어봐서 높은 월세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은 게 아니었어.      


고음 불가인데도 가창력을 요하는 노래만 골라서 부르는 필리핀 여자아이가 내 침대 위를 차지했다. 

조용할 땐 크게 음악을 틀고 어느 곳에서라도 춤사위를 펼쳤는데 

그도 아니라면 2층 침대 위에서조차 그루브를 타서 침대가 종종 들썩들썩 이었어.     

맞은편 침대 상황은 좀 더 나을까 싶었지만 무한도전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킥킥대는 한국 여자아이, 밤마다 필리핀에 두고 온 어린 아들과 눈물을 훔치며 

장시간 통화를 하는 필리핀 여자분이 있었다.

국적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들과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생각 외로 힘든 일이었어. 

매일매일 이벤트가 넘쳤다고나 할까. 


전혀 보장되지 않은 의식주 생활 속에 두바이 생활은 전혀 화려하지 않았다. 

하루 8시간 이상 보람 일지 어쩔지 모를 그런 일을 하고 찌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정신없이 잠에 빠져드는 나날들. 

그 와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던 두바이 마천루 야경은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였지. 

그래도 심적으론 두바이라서 다행이다 싶었어. 

그나마 내 꿈에 가까이 다다를 수 있을, 지근거리에 있다고 생각했거든. 적어도 그때는.


근무를 하다, 면접 공고가 뜨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근무 일정을 조정하고 

몰래 다른 회사 면접을 보러 나갔다.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서 새벽부터 나가 보던 면접장소는 두바이일 때도 있었고 

2시간 떨어져 있던 아부다비일 때도 있었어. 

부산스럽게 이중생활을 이어나가다가 문득 정신이 들 때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지금 이 지질한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합격 말곤 없었는데... 


그러다, 아부다비까지 갔던 어느 날,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1, 2차 면접에 통과해 최종 면접에 가게 된 날이 있었다.  최종면접이라니!

   

네가 제일 멀리 갔던 때는 언제였을까 혼자 생각했다가, 다시 먹먹해졌다. 
너는 지금, 너무 멀리도 가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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