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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an 24. 2022

시선이 바뀌는 순간

어렵사리 최종면접에까지 가고 나니 다시 기대란 걸 마음에 품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 잠시 둥둥 날았다.

기대감, 꿈만으로도 생활의 시선이란 게 바뀔 수 있는 거였구나.

아주 미량의 긍정적인 기운이 주입되었을 뿐이었는데 모든 게 다른 각도로 보였다.

몸은 그대로 좁은 방, 철제 1층 침대였을 뿐인데

필리피노 룸메이트의 둠칫 둠칫이 거슬리지 않았던 게다.


한참을 절망과 희망 사이의 선 위에 서있었다.

이 선만 넘으면 난 그동안 꿈꾼 대로 하늘을 날 수 있겠지.

하지만 못 넘으면 그대로 이 차갑고 딱딱한 매트리스 위 신세였었다. 

선 하나를 중심으로,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갔던 탓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같이 리듬을 타기로 했다. 


처음으로 룸메이트 조안나의 감출 수 없는 흥에 응답해줬다. 

매번 신경질적이던 아이가, 응하는 몸짓을 보이니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된 그녀.

본래의 끼만으로도 충분히 클럽 아닌 방구석에서조차 흥을 실현할 수 있을 그녀였지만 

한번 물꼬를 트니 신명이란 게 봇물 터지듯 터졌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고, 정신줄 놓고 음악에 맞춰 춤을 췄던 날이다.


두바이에 와서 처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밤. 

지겨웠던 룸메이트들과 처음 음악으로 춤으로 접점에서 만났던 날. 

시끄럽던 따갈로 어(필리핀어)가, 필리핀에 두고 온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따뜻한 언어로 들리기 시작했던 날. 

한국 여자아이가 크게 틀어놨던 무한도전 볼륨이, 

나와 같은 그리움, 향수병이었다고 뒤늦게 알아차리게 한 밤.


가끔, 이렇게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있다. 

똑같은 자리지만, 살만하게 느끼게 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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