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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Apr 19. 2022

손절한 사람, 손절당한 사람

휘낭시에 굽는 시간

손절 損切. 지속 하락 추세이니, 매입 가격 이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매도하라는 것이다. 추가 매수를 한 들_ 주가(株價)가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지속 하락 추세인 종목에 주로 손절을 추천한다. 하지만 주린이에게 큰 수익을 얻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작은 손절이라도 감행하는 일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때로 손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일보다 묵은 인연을 끝맺는 일은

늘 어렵다. 크고 작은 갈등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

관계를, 추가적으로 흙으로 메운 들_ 그 메움이 쉽지 않다. 상처로 인한 마음의 손실이 두려워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데다

그 와중에 크게 한 방 맞으면

메울 구멍조차 없을 만큼 그냥, 뻥 뚫리고 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꼴도 보기 싫어,

인연으로 메워보다, 지나간 추억으로 덮어보다가,

손절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한 관계들이 몇 있었다.


나에게도 그랬던 손절이, 누군가에게도 있었을 테다.

나 역시 몇 번의 손절을 감행했고 또, 당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힐끗 넘어다보는

그런 사람 몇이 있다. 사람이 아깝고 추억이 아쉬운

관계.







내가 만들 줄 아는 몇 안 되는 구운 빵 중에 휘낭시에가

있다. 그럴싸한 휘낭시에가 나올 때마다 나는

내가 손절했던 사람과 나를 손절했던 사람을 떠올린다.


휘낭시에로 인해 바삭하게 달콤한 시간을 일단은

나누고 싶은 모양이다.


손절은 했을지언정, 손절을 당했을지언정

너무 소중해서 아팠거나 한때 소중했어서 지금이

쓰라린 그런 사이인 걸까.





그러나 저러나, 휘낭시에를 나누는 시간이 쉽지는 않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오븐 속에서 노릇해진

휘낭시에가 한 김 식는다.


그렇게, 휘낭시에를 굽는 그 30분 동안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다 구워진 3분 동안 나 혼자 맛있게 해치우면서 몇 판을 구웠다.


A에게 말했다.

"난 아무래도 B에게 손절당한 것 같아. 하지만

휘낭시에 구울 때마다 항상 그 아이 생각이 나."


만나자고 하면 '그래, 그러자' 거절하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냐고_정확하게 승낙하지도 않던

B에게서 손절의 스산한 기운을 감지했던 까닭이었다.


C에게 손절을 당한 A는 내게 말했다.

"휘낭시에를 구워서 그냥 B에게 가져다줘.

네가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표현해."


그러면서 A는 어디선가 C를 만나게 되면

덜컥 C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 작정이라고 했다.

보고 싶었다고 대뜸 말할 기세였다.


휘낭시에를 손수 만들고 건네는 선의를 보이면

나를 손절했던 B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깊어지다 못해 휑 뚫린 우리 사이의 구멍이 휘낭시에

몇 조각으로 다시 메워질 수 있을까.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의 김규리는 손절당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 이요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선물을 하며 다가간다. 

“내가 너 진짜 좋아하는 거 알지?” 다정한 말을 건네며.


그런 선의의 눈빛 앞에, 이요원은 소리친다.


"내가 니 진짜 얼굴을 모를 줄 알아?

겉으로는 생각해주는 척, 안타까운 척,

그러면서 뱀의 혀처럼 남의 아픈 곳만 후벼 파는

이 간악한!"


타인이 불편하고, 마음 한 켠 여유롭지 못해

어렵게 끊은 손절한 관계를

나만의 좋은 의도로, 추억 곱씹으로

일방적으로, 지속적으로, 추가 매수를 한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려나. 그런 나를 손절한 사람은

매몰찬 사람이려나.


휘낭시에를 내밀었다가 도리어

"겉으로는 생각해주는 척, 지금 휘낭시에

먹을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냐! 이 속 모르는!

(ㄴ ㅕ ㄴ ㅇ ㅏ!)


이요원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나 또한 그런 소리라도

듣는 건 아닌지 몰라 싶어,

혼자 또 조용히 오물거렸다.


손절에, 거리두기에, 이유가 있을 테지.

말 못 할, 말하고 싶지 않은_어려운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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