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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ul 26. 2022

정리에 서투른 아내 vs 정리벽이 있는 남편

아이가 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보라색 양말 다섯 짝을 나란히 펼치며.


"엄마 왜 하나가 없어?"


6세 아이의 계산법으로도 분명 '3켤레 = 양말 6짝' 이 분명한데... 짝 없는 한 켤레의 양말을 보니, 뭐가 안 맞았나 보다.


양말은 어디로 갔을까. 매번 세탁바구니에서, 세탁기로,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이어지는

뻔한 동선 속의 양말들. 하지만 우리 집 양말들은 빈번히 자취를 감춘다.


서랍 속엔, 짝 없는 양말들이 여럿이다. 사라진 다른 한 짝을 기다리며, 저마다 수군거린다. '이 집에선 늘 있는 일이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나오긴 나와!'







이렇게 어제 인사했던 물건들이, 오늘은 제자리에 없어서 내일 못 만나는 때가 많다. 숨바꼭질 시작!


정리를 잘하면 될 텐데 나는 종종 정리 중에 길을 잃는다.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만큼 진도가 안 나가는 일도 없다. 누군가는 습관처럼 하는  정리 속에 마음이 홀가분하다는데 나에게 정리란 늘 미루게 되는 일이다. 거기에 건망증이 일을 더한다.

 

내가 지나간 자리엔 늘 흔적이 남고, 다 마신 커피 뒤 끝엔 매번 얼룩이 남는다. 우유와 남은 커피가 한 데 뒤엉켜 굳어져 고체화된 흔적은 꽤나 오래가서

또 다른 설거지 숙제를 남긴다. 바로 씻기지 않고, 불려야 한다.


마시고 난 유리컵을 그 자리에서 물로 씻어 제자리에 두었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 간단한 일을 못해서 일을 더 만드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게으름 에, '쌍둥이들'이라는 핑계를 들이대 민다.






어느 날, 화장실 가던 새벽녘엔

와장창 유리잔을 깼다. 두 아이 틈바구니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살짝 빠져나와 화장실을 들르고 물 한 잔 마시려던 거였는데... 잠들기 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유리잔을 잠결에 놓친 게다.


새벽 3시 반, 사방으로 튄 요리 조각과 함께 단잠마저 달아났다. 눈 비비고 일어난 순간부터 온 집안을 훑으며 뛰어다닐 아이들이 눈에 선했다. 거실 바닥 틈새에 행여 유리조각이 박히지나 않았을까 싶어, 거실과 주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또 훑었다. 테이프로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나자 동이 텄다.


"어젯밤에 뭐가 깨졌어?" 아침 식사를 하던 남편이 물었다.

(...)

재차 질문이 이어진 끝에, 머뭇머뭇 대답이 이어졌다

"유리잔이 하나 깨졌어."


"그 유리잔을 왜 식탁에 두나... 했다.

나는 안방 협탁 위 물컵도 불안하더라."


(언젠가, 한 번은 깨질 컵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듯,

예견된 일이라기도 하였다는 듯,

무심한 답변이 이어졌다.


"다치진 않았어?"

"그 새벽에, 그래서 유리잔을 다 치웠어?"


내 발바닥이 성한 지, 새벽녘의 때아닌 청소로 잃어버린 내 단잠에 대한 안부는 대신 질책의 말이 들려왔다.









유리잔을 식탁에 둘 수도 있지, 그럼 어디에 두나.

자기 전 머리맡에 자리끼도 두는데... 밤 사이 협탁 위에

놓는 물 한잔은 왜 나오나.


항변의 문장들이 맴돌았지만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일렁거리는 통에 입을 닫았다. 섣불리 억울해했다가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에서처럼 "왜 저런 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습관과도 같은 내 부주의함을 탓하는 남편의 문장들이 이어질까 봐.


좌석 수와 탁상 수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초조해진다. 탁상 하나에 의자 4개가 한 조일 텐데, 5개인 자리와 3개인 자리가 있다. 왜 저런 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_ 120/444


그렇다. 난 이런 수와 열, 규칙에 별 관심이 없다. 어지러움이 불편하지 않다. '저런 데'에 한 번도 마음을 써본 적이 없는 아내와 어느 곳에든 사소한 차이를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는 남편 사이에, 정리로 인한 투닥거림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루의 시작부터 피로하다고 꼈던 하루의 끝무렵

샤워부스 안 유리창을 물 긁개로 긁고 있던 6세 아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샤워를 끝마친 아들을 잠시 두고 드라이기를 가지러 간 사이였는데... 그 사이 아들은 샤워부스 안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을 정리 중이었던 게다.








몸 닦기도 바쁜 샤워 후, 부스 안 물방울을 걷어낼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던 내게 6세 아들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 뒤로 유심히 관찰해보니, 아들은 시시때때로 어지러워진 신발들을 정리하고 목욕용품들을 열 맞춰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의 조금 짧아진 헤어스타일을 발견하고 "엄마, 오늘 예뻐."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엄마가 놓치는 것들을 신경 쓰고 인지하는 아들의 모습에 내 두 눈은 반짝거렸다. 때로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정리 습관과 예리함이라는 단점이 아들에게선 장점으로 날개를 달았다. "오구오구" 감탄사와 함께. 아들의 그것이, 기질이나 성향의 이유인지 아빠의 행동을 어깨너머로 본 학습의 효과인 건지 모를 일이지만. 손 끝이 야무지지 못한 나는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엄마 안 닮아서 다행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와중에도 일렬로 세워

노는, 나와는 다른 아들의 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고 있는 내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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