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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ul 18. 2022

두바이, 무모한 도망 끝 양념치킨

두바이 무단횡단 실수

무단횡단으로, 사복 경찰에게 걸렸을 뿐인데... 어찌 된 영문인 지 두바이 관광객은 도망을 결심하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50m 남겨두고 무단횡단을 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벌금도 아까웠지만 여권이나 비자 없이 밤마실을 나섰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일까 싶었다. 게다가 도망의 여지를 남겼던 건,  날 잡아놓고 나에게 집중하는 이는 1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찰차 앞에 서있는 경찰관 3, 그리고 필리피노 3의 위치.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지점. 빌딩들이 몰려있는 코너까지의 거리. 삼각형이 그려졌다. 6명의 눈을 피해, 코너 지점까지만 다 닿아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빌딩 숲 사이, 인파들에 섞일 수도 있을 거라는 무모한 생각이 일렁거렸다. 그들의 눈을 피해, 코너까지만! 12개의 눈동자만 없다고 생각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안 걸리고 뛸 수 있을까?'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나는 이미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내 몇 발자국에도, 그들은 미동이 전혀 없었다. 얼추 성공을 직감한 뒤로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릴레이 계주에서, 늘 첫 번째거나 마지막 주자곤 했던 내 실력이 두바이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승점에 다다라_테이프를 끊고 만세를 외치던 환희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뛰고 또 뛰었다. 발은 빨랐지만 발소리는 나지 않게 가뿐했다. 제법 달렸다 생각이 들면서 안도의 한숨이 깃들었을 때 결정을 해야 했다. 주차장으로 계속 달릴 것인지, 옆 빌딩 안 쇼핑몰로 들어가 쇼핑객들 사이에 묻힐 것인지. 후자를 택했다. 쇼핑몰에 다 닿아 입고 있던 옷을 훑어보았다. 회색 스커트에 검은색 카디건. 아바야를 두른 아랍 여자들처럼, 눈만 내놓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옷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1층 마트는 온통 식품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검은색 카디건을 벗어 머리에라도 둘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내 등을 콕! 찌르던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날 찌르는 누군가가 경찰이라면, 무안해하는 표정을 지어야 할까, 왈칵 눈물이라도 쏟아야 하는 걸까. 고개를 돌렸더니 아까 경찰들과 함께 서있던 또 다른 무단횡단자, 필리피노 한 명이 서있었다.







"야, 너 비자 없어? 대체 도망은 왜 쳤어! 지금 경찰들이 너 찾고 있어! 어쩌자고 도망을 쳐!!!"


여전히 눈앞은 캄캄했지만 애먼 사람에게 탓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쇼핑몰을 나와 다시금 뒤편 주차장으로 나왔다. 차와 차 사이를 숨어 숨어, 그리고 달리고 달려 빌딩과 빌딩 사이를 넘나들었다. 저 멀리 주차장 너머로 나를 찾고 있음이 분명한 경찰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중에 걸리더라도, 여전히 난 뛰어야만 했다. 또 다른 도로가에 다다르자, 직진해오는 자동차가 오든지 말든지 다시금 무단횡단을 감행했다. 그런데 저 멀리, 알 수 없이 난무한 아랍어 간판들 사이에서 김 치킨(Kim Chicken) 간판이 보였다. 정신없이 김 치킨 안으로 들어가니, 영문 모를 기다림에, 입이 댓 발 나온 친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안 쪽에 앉아있던 그녀를 창 쪽으로 억지로 끌어내 앉혔다. 그리고 나는 매장 벽 쪽에 붙다시피 했다. 창 너머로 두바이 경찰 셋의 모습이 지나갔다.


한국에서도 경찰 눈을 피해 도망을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건만. 무단횡단 한 번에 이렇게 모험을 감행해야 했었나...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념치킨 앞에 있었다. 이토록 어렵게 마주한 양념치킨이 있었던가. 여전히 콩닥콩닥한 마음에, 이마에 땀이 흥건했지만 허겁지겁 양념치킨 반을 먹었다. 그날따라 양념이 잘 베인 치킨 겉은 바삭바삭, 속살을 부들거렸고 양념치킨 사이로 가끔 씹히는 견과류들은 고소했다. 새콤달콤 무는 아삭거렸고 시원한 맥주는 거침없이 잘 넘어갔다. 18만 원짜리 벌금으로부터 달아나, 몰래 먹는 1만 8천 원짜리 양념치킨은

그날, 미슐랭 별 단 레스토랑에서 먹는 근사한 저녁 못지않게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두바이 경찰의 권한은 워낙 막강해서 중대한 법규를 어긴 자들 중 몇은 사막의 땡볕 아래 알몸으로 벗겨진 채로 태형이라는 채찍을 맞기도 하였단다. 태형의 스킬이 발달해, 일정한 강도로 휘핑 휘핑 채찍질이 가능하단다. 그렇게 흠씬 맞다가 피로 범벅된 채로 사막의 뙤약볕에 내던져진다는 이야기. 뒤늦게서야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국에서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뒤돌아보는 소심한 소시민이면서 멋모르는 두바이 관광객은 그날 무슨 정신으로 내달렸을까. 








그날 밤, 잠들기 전 내 노트엔 빼곡히 계산이 즐비했다.


- Pedestrians crossing from undesignated places (Jaywalking)/ 무단횡단; 200 디람
- Not showing driving license when required / 신분증 제시 거부; 200 디람
- Non-complying with Traffic Officer’s instructions / 교통경찰 조사 불응; 200 디람
- Running away from Traffic Officer 도주; 200 디람
- Abstention to give name and address to Traffic Officer 개인정보 공유 불응; 200 디람


두바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멋 몰랐다는 것치곤 꽤나 무모했던 두바이 관광객. 그래도 거의 30만 원의 벌금 폭탄을 아꼈다 하며, 안도의 한숨 속에 잠이 들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릴레이 계주로 이겼던 어느날보다 더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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