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 육아 vs 명랑 육아

 한 엄마가 서 있다. 서릿발에 적장 앞에 선 장수처럼 마음이 비장하다. 기골은 장대하고 기세는 위풍당당하다. 이 아이에게 절대로 상처를 주지 않으리라. 좋은 엄마가 되리라. 내가 오은영이요, 방구석 서천석이다. 내 절대 이 아이에게만은 최고의 것을 주리라. 엄마는 주먹을 꽉 쥔다. 눈에서는 불꽃이 타오른다. 내 죽어도 육아를 하며 죽으리. 오늘이 세상의 끝날인 듯 이 아이만 보리. 너는 나의 알파와 오메가, 나는 너만의 우주. 비장함에 주먹이 절로 쥐어진다.      

  또 한 엄마가 있다. 이 엄마는 아이와 그저 ‘함께’ 있는다. 마음 속의 행복의 기운이 아이에게 전염되기를 바라며, 함께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힘을 믿는다. 적당히 힘 빼고, 최대한 웃고 즐기려 한다. 오늘 하루만 엄마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엄마다. 육아는 장거리 달리기다. 자기 페이스를 지킨다. 무리하지 않고, 내가 아닌 모습으로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다. 다만 명랑함을 유지한다.      

  두 엄마는 모두 나다. 모두 우리다.      

  엄마들은 비장 육아와 명랑 육아 사이를 수시로 횡단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드를 전환한다. 그래야 한다. 비장 육아로 마음을 다잡고, 명랑 육아로 텐션을 끌어올린다. 나와 아이의 컨디션, 육아를 도와줄 실제적 자원, 그날 하루의 조건들을 고려해 최고의 배합을 녹여 낸다.      

  우리에게는 비장 육아와 명랑 육아 모두가 필요하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한다는 말로 실은 아이를 방치하고 싶을 때(다행히 우리집 상호작용 중독자는 쉽게 방치를 허락하지 않는다. 감사 하모니카), 으레 그런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자유롭게 버럭하고 싶을 때 내 마음을 잡아줄 비장 육아가 필요하다. 아이의 하루는 어른의 1년이라는 적당한 비장함이 필요하다.  

    

  인간을 낳았다는 것의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이 느껴질 때, 덕질을 좋아하고 책읽기 좋아하던 평범한 소녀가 ‘엄마’로 엄청나게 변태했음이 피부로 와닿을 때는 그저 이 순간 아이와 즐겁게 생존하기를 택해야 한다. 유쾌하게 버텨야 한다. 억지로, 안간힘을 써서라도 명랑함을 유지해야 한다.      

  오늘도 난 너와 함께 있다. 난 너의 좋은 엄마이자, 네 곁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즐거운 사람이고 싶다.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 아닌 가장 가까이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으로 함께하고 싶다. 그렇기에 오늘도 온 힘을 다해 ‘사랑해’ 라 말하고, 네 앞에서 수시로 개다리 춤을 춘다. 몸이 닳아 없어질만큼 너를 안고 어루만지며 뜬금없는 상황극을 시전한다.     

 오늘도 너와 함께 이 길을 걷길 택한다. 지나친 비장함과 책임감에 쓰러지지 않으면서도 너의 소중한 하루가 사랑으로 꽉 채워 질 수 있도록. 나로 인해 아이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매순간 주먹 쥐진 않지만, 지금 네가 행복한지 제법 진지하게 고민한다. 세상에 얼마나 신나는 일이 많은지 도록도록 빛나는 네 눈을 보며 이야기 한다.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매일을 두근거리며 맞길 선택한다. 적당히 비장하게, 적당한 명랑과 유쾌함을 온 몸에 장착하고서. 너와 함께 오늘도 유쾌하고 명랑하게 생존하길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