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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대만

준비없는 2박 3일

by 팬티바람


1.


내 여행 역사에 이런 막나가는 여행이 있었나싶다. 대만에 있는 친한 형이 대뜸 비행기표만 사서 오면된다 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날라갔다. 숙박도, 환전도 아무 것도 안했다. 마침 여름 휴가 시즌이라 이것저것 따질 세도 없었다. 트렁크에는 옷하고 속옷 몇개, 세면용품만 넣고 대만이라는 나라가 어떤지 1도 조사하지 않고 도착해버렸다. 흡사 묻지마 관광 같았다.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서 잠시 멍했다. 이제 뭐해야되지 여긴 어디지 난 누굴까. 저 멀리 헐레벌레 뛰어오는 형의 모습이 보인다.


나: 형, 나 진짜 왕복 비행기표만 샀어.

형: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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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만은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나라였다. 앙증맞다 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묘하게 정돈된 도시와 거리들, 빛바랜 네온사인들, 그리고 가끔씩 내리는 소나기까지. 대만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형의 잔소리 같은 대만예찬론이 지겨울 때 쯤, 맥주가 땡겼다. 편의점 벤치에 앉아 오가는 오토바이를 구경하며 거국적으로다가 한 잔 들이킨다. 이 여행 자체가 신세지는 컨셉의 여행인지라 너를 데려오지 못한 마음이 맥주 거품 따라 속이 쓰린다. 나 혼자 맥주 두 캔을 마신 뒤 형이 예약해준 호텔로 들어간다. 형네 집은 좁아서 두명이 잘 수 없기에 나를 어떤 골목길에 숨어있는 호텔에 쳐박아 놓았다. 내일 아침 데리러 오겠다는 형을 보내고서야 할 말이 생각났다.


형, 그러니까 대체 여기가 어디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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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만은 망고가 유명하고 더불어 망고빙수도 아주 맛있다고 익히 들었다. 카카오톡으로 내게 망고 먹는 모습을 종종 보내던 형 말 따라 망고빙수를 사달라고 하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은 망고철이 아니라서 망고가 맛이 없으니 사 줄 수가 없다 라는 헛소리. 내가 먹고 싶고 길거리에 버젓이 망고를 팔고 있는데 망고철이 아니라서 사줄 수가 없다니 이게 무슨 똥 같은 소리인가. 당장 망고빙수를 사주지 않는다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내 굳은 의지를 관철하였다. 큰 한숨을 쉬고서는 구비구비 골목길을 돌고돌아 어느 시장통 빙수집을 기여코 당도하였다. 형은 높낮이 현란하게 마치 홍콩 배우처럼 망고빙수를 주문하였고 마주한 빙수는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빙수 역사에 계절이 없다라는 건 모든 지인이 알만큼 확고하기에 크게 한 입 먹어본다.


젠장, 너무 맛있다.

뭐? 망고철이 어쩌고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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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친김에 타이거슈가도 가기로한다. 역시나 이 망할 형은 뜨뜨미지근하다. 프렌차이즈는 맛이 없댄다. 아니 그러면 더 맛있는걸 사주든가. 그런데 형은 밀크티를 별로 안 좋아한다라는 소리에 당장 길가에 보이는 매장에 데려갔다. 당장 주문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먹는 메뉴로. 그래도 주문하는 형의 뒷모습이 조금 멋있었다.

영롱한 버블티를 목도하고 목 젖 힘차게 빨대를 빨아본다. 꿀꺽꿀꺽 입 안을 맴도는 펄을 촘촘하게 씹어넘긴다. 가끔 우리가 밀크티를 먹게 될 때면 너는 이빨에 끼는 펄이 싫다고 했다. 나는 바닥에 깔린 2인분의 펄들을 먹다가 미쳐 씹지못한 알갱이들이 목구멍을 타고 그냥 넘어 갈 때도 있었다. 검정색 조그만 펄들은 마치 개구리 알처럼 생겨서 밀크티를 먹은 날은 올챙이가 밤새 내 뱃 속을 돌아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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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길가다가 줄 서 있는 가게를 보고 또다시 형을 부른다. 뭔지 몰라도 저걸 먹어야겠으니 통역을 요청한다. 알고보니 꽤나 유명한 지파이 라는 닭튀김이었다. 치킨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한국인이기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사실 엄청 맛이 있을정도는 아니였으나 낯선 땅에 쪼그리고 앉아 닭고기를 씹는 내 모습이 가게 유리에 비치는데 거지같았다. 대만에 와서 그럴싸한 음식을 못 먹고 이리저리 형 따라 뺑뺑이만 돌다보니 시차고 나발이고 모든게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여기가 정말 대만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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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꾸 골목으로만 끌고 가는 형은 뭐가 그리 신났을까. 여기는 뭐가 맛있고 여기서 뭐했고 등등 본인의 추억담을 풀어내기 바빴다. 정작 이따금씩 물어보는 내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소나기가 내리면 건물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데 발 밑에 엄청 큰 달팽이가 움직인다. 길가에 달팽이든 지렁이든 돌아다니는 꼴을 못 보는 네 모습이 빙의되어 근처 잔디밭에 옮겨놓는다. 저렇게 다니면 죽는다고 쪼그려앉아 나뭇가지로 하나하나 들쳐메고 숲으로 돌려보내곤 하던 너는, 막상 스스로를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 나의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는 꽤나 야박하고 냉정한 사람인가보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슬퍼질 때도 있다. 대만에서 이런 대만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여행내내 채워지지 않은 어떠한 허기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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