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인생에 폐암 4기라는 선물을
덜컥 받으신 뒤 서둘러 포장을 까고 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머리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뇌전이 때문에 몸이 불편할 것이라는
의사 말에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느라
회사만큼 방사선실이 익숙하다.
언제부터인가 다리를 절었다 안절었다
그리고 머리를 도리도리 떠시는 모습을 보며
빨리 병원에 데려갔어야 하는데
그저 노화 라는 단어로, 괜찮다 라는 본인 말로
넘겼던 무책임했던 아들인 것 같아서
분하고 야속하다.
방사선 치료의 일반적인 부작용으로는
구토, 어지러움 그리고 기억력 감퇴 등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하신다.
옛 기억에 의존해서 현실을 잊으신다면야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않을까?
치료를 받고 집에 가는 길,
잘듯 말 듯 자동차 보조석에 앉아서
본인의 전성기 때 운전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는지
심각하게 눈썹을 찡그리시며 창 밖을 보신다.
-엄마, 왜 안자?
-그래, 여기는 서초동, 반포, 이제 거의 다 왔겠네
마치 옹알이를 하는 것 같다.
5분 전에 먹은 약을 안 먹은 것 같다고,
새벽 4시에 전화해서 택배가 왜 안 오냐고,
오늘 회사는 왜 안 가며 무슨 요일이냐고.
사실 택배는 어제 왔고 나는 회사를 갔다 왔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대화에
나는 짜증 하나 내지 않는다.
그저 장난 전화 인 척 웃으며 받아버린다.
나쁘지 않다.
그저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된다.
오만가지에 장난에 충분히 당해봤기에
이런 장난 쯤이야 익숙하다.
성격적으로, 환경적으로 마주하는 시련에 있어서
대부분 혼자 헤쳐나가고 막히면 인내하고
못 뚫으면 그저 감내했다.
사실 사람을 믿기 어려웠고 만나는 사람들을
어렵사리 믿어 볼 때 쯤 기가막히게 상처가 되어
준 만큼 돌아오기 일쑤였다.
늘 실패한 사랑의 수해자가 되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되겠지만
아직도 누군가를 믿기 어렵다.
그 것이 내 불안의 원천이고
그런 상처를 또 감내하게 될 까봐 겁이난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실전이다.
저녁에는 울다가 아침에는 다시 파이팅 하는
어느 늑대인간의 하루같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순간을 장난처럼 넘겨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