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털털한 성격인데
예민하고 낯을 가린다.
한마디로 나는 성격이 꼬여있다.
그만큼 내 몸의 털들도 꼬여있다.
꼬불꼬불
그와중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랄까 봐
갈색, 흰색 털들이 반동분자처럼
이곳저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몸에 털이 많지 않고 남들보다 길게
자라는 탓에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몸 군데군데 미역을 두른 것 처럼
거무튀튀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슴에는 털이 없다.
수북한 수염을 기르고 싶었으나
털끼리 연결되지 않으며
007 제임스본드처럼 섹시한 가슴털을
갖고 싶었으나 선천적으로 없으니
이놈의 비루한 몸뚱이에서는
털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하염없이 길어지는, 지쳐 늘어지는,
삐죽삐죽 정리 안 되는 이 녀석들을 보며
정신을 바짝 차려본다.
분위기에 휩쓸려 털주인까지 쓰러지면 안 되지.
심기일전, 뒤돌아서 과거를 바라보던 나를
180도 돌이켜 세운다.
그저 정리를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번뜩 '왁싱'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털털하지 못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