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관을 가지게 된다면"
온갖 미사여구로 구름같은 화환을 씌울 수도 있다. 어떤 차별과 차별이 낳은 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두고 버지니아 울프는 고민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리얼리티'로 돌아온다. 유구한 문학의 역사 속에서 여자 창작자만이 없는 기현상에 대해, 그리고 문학 속에서 과장되고 일그러진 뮤즈로 손발이 뭉그러진 채 둥둥 떠다니는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남자 보증인이 없다면 대학 내 어디도 들어갈 수 없는 기막힌 현실과 맞물리게 된다. 예술가의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 고도의 집중력이 없다면 이어갈 수 없는 작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먹고 사는 일에 근심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가둘 수 있는 사방 벽이 창작의 '기본조건'이 될테다. 그러나 여성은 아주 최근까지도 그런 기본적인 '생존조건'조차 누릴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남자 보호자가 없으면 마차를 타고 옆마을로 여행을 가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겨우 100년 조금 더 전만 해도.
피임이 허락되지 않거나 피임에 대해 무지했거나 혹은 피임을 통해 최소한의 숨구멍이라도 아내에게 틔워주려는 남편의 배려는 바랄 수 없었기에 가임기간 동안 거의 내내 임신해 있어야 했고 그렇게 낳은 자녀들을 더러 잃기도 하면서 감수성이 예민하고 의식과 인식이 자라나는 시기의 여자들은 가사노동과 육아에 몸과 영혼을 모두 바쳐야 했다. 귀족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귀족 영애는 사교계에 진출해 육체를 전시하고 때로는 잘못된 사랑에 걸려들어 강에 뛰어들거나 팔려가듯 결혼을 해야 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 뿐이지 구름이 하늘 중간에 걸린 것을 보려고 마을 어귀의 언덕에 오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자유가 없는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사유하고 '모든 것을 말끔히 불태운' 작품을 쓰겠는가. 기껏해야 우울증에 빠지거나 육체를 이용당하는 불륜에 무기력을 불태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온 사람은 결국 무엇이라도 만들게 되지만... 출구 없는 욕망과 감옥 같은 현실에 갇혀 유리새장 안에서 몸부림치는 날개가 피워낼 수 있는 것은 피비린내일 뿐. 그런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시간의 무구함 속에 묻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발버둥도 사실 신분이 높은 여성에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가난한 살림을 어떻게든 꾸리며 쉴 수 있는 방 한 칸도 가지지 못한채 충실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소진하다가 죽는다. 비석에 적힌 생몰연대 한 줄로 남는 삶. 제인 오스틴 조차 사람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는 공동거실의 한켠에 앉아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압지로 원고를 가리며 <오만과 편견>을 집필했다.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환경에서도 그렇게 우아하고 균형감있는 작품이 탄생한 것은 그녀가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사방의 벽과 문, 거기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힘이 있어서였다. 픽션, 최소한 소설이라고 하는 장르적 특성에서 본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 - 인식 - 사유 - 세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진 '남성의 환상에서 태어난 천사-괴물-악마와 같은 여성' 이 아닌, 장바구니를 들고 도로의 포석을 밟으며 바쁘게 걸어내려오는 저 여인, 부드럽고 아름다운 생활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많은 여인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소품을 써서 싼값에 팔았던 선구자 여인들, 그녀들이 만든 희미하고 좁은 길을 기꺼이 걸어간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 그리고 그녀 자신.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들.
우리들은 가여운 버지니아가 주머니에 돌을 넣으며 호수로 걸어들어가던 오후보다는 어쩌면 나은 시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환상은 힘이 세고, 여성들조차 인류가 만들어온 '여성성'이라는 신기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머리 위에는 여전히 유리 천장이 있고 발을 옥죄는 유리구두 혹은 마녀의 징벌이라는 분홍신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고 있다. 우리의 언어가 지옥의 무도회에서 나와 간결한 일상복을 입고 반듯한 목소리로 모든 감정을 받아안아 불태운 후 그 깨끗한 세계의 지평 위에 설 때 우리는 그녀들이 애써서 만들어놓은 오솔길을 걸어가 아름다운 텍스트 한 줄을 꺼내놓을 것이다. 우리에겐 사방 벽이 있고,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은 있지만, 아직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관은 없다. 그러기엔 아직 세상은 여자에게 일그러진 잣대를 가지고 있다. 여성은 아직도 남성에게 착취의 대상이 되고, 남성들은 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채 나약한 환상만 만들어 끌어안고 사랑한다. 세상의 주요한 성은 아직도 남성이며, 여성은 '좋게 하는 말로만' 동등한 성일 뿐 이 냉혹한 세계의 작동원리에서 여전히 쉽게 배제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느리지만 참을성 있게, 여성의 언어들이 피어나고 있다.
지금 나의 서가 앞에 버지니아 울프가 선다면, 그녀의 손가락이 책등을 훑다가 지금 여기 어느 여성 작가의 작품집을 뽑아든다면 -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기를 바란다. 그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더 나아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