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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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바람이 그를 안고 훌쩍 사라지더라. 깜짝 놀라 머물던 자리를 살펴보니 무게가 실린 흔적이 없더라. 그는 분명 키가 크고 등이 넓었는데, 그윽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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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기 쪼그려 앉아 그늘이라도 헤집고 그림자라도 더듬고 행여 그가 흘렸을지 모르는 진땀이나 눈물이라도 찾고 싶어 애를 쓰는데. 문득 바람이 구름을 걷으며 어느 커다란 꽃에서 떨어졌는지 부드럽고 환한 금빛 너울이 나를 내리덮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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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픈 사람의 다정이 거기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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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손이 바짓단을 흔들면 그만 발부터 사라지고 싶겠지. 조그만 몸이 까르륵 거리며 뛰놀 숲의 흙으로 녹아들고 싶겠지. 부드러운 몸을 안고 잠에서 깨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슬픔이 너를 데려가기 전에 여기엔 또 소중한 것들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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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픈 사람을 안고 시가 흘러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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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나도 무엇도 그 슬픔 앞에는 위로가 될 수 없어 그저 고요하였다. 그가 안긴 시의 품이 서늘할지라도 그의 눈물을 받아 천천히 맑아지기를 -. 그저 바라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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