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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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 자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산책은 아무 곳에도 향하지 않아서 어디에나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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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변을 걷는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그는 걱정을 걷는다. 그는 슬픔을 걷는다. 어디에도 닿지 않는 걱정과 그래서 걱정이 되지 않는 걱정을 걷는다. 눈물이 되지 않는 슬픔과 그래서 슬픔이 되어버리는 슬픔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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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억을 걷는다. 어머니와 고양이와 아버지를 걷는다. 골방을 걷는다. 비에 떠내려가는 소리를 걷는다. 어느 계절에 발을 적시지 않고 걷는다. 기억 속의 감정은 사실 낯설다. 내 것이었는데 왠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은 어떤 '속'을 그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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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지런히 걷는다. 그는 느리게 걷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가 어제같지만 어제같지 않은 어떤 풍경으로 걸어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누군가 인사한다. 그도 인사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그도 마주 미소짓는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웅성거리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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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그를 걷는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가 만든 인식의 새장을 빙빙 돌면서. 절대 닿지 못할, 거울 속에서 어색하게 마주 바라보는, 어떤 후줄근하고 느린 육체와, 몇 번 각색되었는지 셀 수도 없는, 완전한 거짓말인 기억과, 어제 죽었는지도 모를, 무덤에서 일어난 이웃들과 어깨를 맞대고 스치고 사라지고 하지만 돌아보면 다시 스치는. 영원히 닿지 못할 '그'에게, '그'를 걸어서 '그' 안에서 '그' 밖으로 빙빙 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