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숙 시집 <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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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눈이 한없이 넓은 사람이 있다. 그의 눈은 세계의 끝에서 끝으로 달리지만 그러기에 그가 보는 것은 크고 무거운 것들. 거대한 것들의 서사가 그의 핏줄을 타고 흐른다. 그러므로 그는 조급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모자라 새를 타고 난다. 지치지 않는 태양처럼 궤도를 따라 그는 무한히 달린다. 정복자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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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밀하고 작은 것들 하나도 지나치지 못하고 일일이 이름을 불러야 하는 산책자가 있다. 그는 세상의 별별 이야기를 다 듣고 보느라 한걸음 걷고 쪼그려 앉고 한걸음 걷고 한참을 손차양하며 어영부영 해찰한다. 해가 몇 번이나 기울다 못해 나무 한 그루가 상사병에 걸려 새가 되는 긴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안다. 필멸자의 시간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그가 조금만 서둘렀다면 이 마을 너머, 저 개울 너머, 저기 저 언덕 너머의 새로운 풍경에 닿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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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닿는 이와 깊이 만지는 이, 무엇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무와 꽃, 새의 이름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공들여 부르는 사람의 마음은 분홍빛일 것이다. 살구나무가 봄볕에 살짝 내어놓는 그해의 가장 연한 호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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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아 사랑을 하고 낳아 보듬어 키우는 일들은 모두 무릎 아래 가깝고 가만한 것. 젖냄새 가득한 아가가 주먹을 흔들며 하늘을 깨우듯 이 느린 걸음이 스치는 모든 풍경이 깨어나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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