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은 내게 여러가지로 익숙한 장소다. 서경과 그가 덕수궁 뜰의 여러 나무들 아래 앉아 기억을 더듬을 때 나도 아주 오래전의 봄을 떠올렸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덕수궁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수문장은 아니었다.) 그녀가 아직 일을 마치지 않아서 경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띄는 나무 아래 벤치에 잠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얼기설기한 나뭇가지 사이로 새 잎이 돋았던가 잎보다 성질이 급한 꽃이 피었던가. 어룽거리는 하늘이 슬몃 비치다 사라지곤 했다. (봄하늘이란 것이 그렇다. 사계절 어느 하늘보다 몽환적인.) 찾아온 친구가 살짝 놀라며 누워서 뭐하냐고 흔들어서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그 때 내가 본 하늘이 그 해 그 날의 봄하늘이었는지, 그 땅에 스민 어느 눈물과 핏방울이 불러낸 몇백 년 전 하늘이었는지는 모른다. 희고 부드러운 옷깃이 이마를 스치는, 맑고 아름다운 봄이었다.
서경과 그가 돌아다니며 먹었던 밥과 술을 나도 떠올린다. 옮겨다니기는 했지만 대체로 근무지가 시청 근처여서 나도 대한문 근처의 오래되고 맛있는 밥집과 술집을 전전했다. 하루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거리였다. 아니 그런 나이였던가. 나는 젊고 눈물이 많았다. 그 거리의 포석 어느 틈으로 내가 흘린 눈물이 아직 결정이 되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어도 등골에 땀이 흐르는 어느 여름날,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것을 보고 호기심으로 보았던 수문장 교대의식을 떠올렸다. 얆은 반팔티셔츠를 입고도 이렇게 땀이 나는데 얼마나 덥고 힘들까 라는 생각만 하고 그대로 지나쳤던. 어쩌면 거기 '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둘러선 관광객들 사이에서 낯익은 혹은 낯선 얼굴을 찾는.
참 이상하지, 인간의 기억이란 생물과 같아서 제멋대로 자라고 제멋대로 달라진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휘어지고 물러진다. 백년도 채 살지 못했으면서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고 기억하는 것들도 제각각의 라벨을 붙이고 제멋대로의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가 너무 벅차서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떠올리는 것이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오늘의 밥이기도 하지만, 어제의 냄새, 촉감,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기어코 가만히 발을 멈추게 하는 미련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미련이 남아서 그 날들을 기억하는가.
내 영혼을 건드려 무언가 바꾸어놓았던 어느 날의 인상이 늙고 병들어 나를 찾아온다. 그와 나란히 서서 우스꽝스러운 수문장복을 입고 잘 보이지도 않는 뷰파인더 속에 들어가는 일. 기억은 사라져도 사진은 남는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진은 왜곡투성이의 기억보다 힘이 약하다. 어떤 기억, 과거의 어떤 흔적은 오늘로 기어이 쳐들어와 멱살을 잡고 흔들기도 한다. 아무리 헐렁헐렁 살고 싶어도 사는 이상 악다구니를 쓰며 뒹굴고 기절할 것 같은 어지럼증을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온다. 반드시 온다. 사람은 죽고 기억은 서서히 흐려져도.
나는 대한문 앞에서 벌에 쏘인 적이 있다. 69 작가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목덜미가 따끔하더니 이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손으로 목을 가리고 행사를 마친 후 근처 약국으로 뛰어가 보여드렸더니 벌에 쏘였다고 하며 침은 빠졌으니 하루 정도 상태를 보고 붓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에 쏘이다니, 아픈건 둘째치고 기가 막혔다. 우리의 행사가 있어서 그날 수문장 교대의식은 오후 한 타임이 비었겠구나.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천천히 끌어내어 바라본다. 대한문 앞에서 흘러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수문장의 시선 끝에는 무엇이 맺혀있을까. 땀냄새 나는 오늘이 있었을까. 지웅은 죽고 서경도 죽고 하지만 하경은 살아있다. 아내도, '그'도 살아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이렇게 정갈한 텍스트로 남을 어느 시간이 거기 머무르고 흘러갔다.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이 걸으면 헤어지는 마법에 걸릴만큼 아름답고 대한문 앞에는 왁자지껄한 관람객들이 늘 북적인다. 병이 돌기 전에는 토요일이면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시위대들이 시끄럽게 맞붙기도 했다. 그 소동에 묻혀서 정위! 하는 수문대의 구령이 울려퍼지기도 했겠지. 기억은 생물이라 자라고 변하고 가끔 눈을 맞추기도 한다. 기억이 될 오늘을 생각하며 천천히 창을 연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해가 막 지붕 사이로 저물고 있다. 2020년 12월 24일, 우리 동네의 풍경.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