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소설 <노라와 모라>

by 별이언니

연구라던가 분석이라던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끌림이 있는 텍스트에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어딘지 모를,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이 텍스트와 나 사이에 가늘고 질긴 고리를 건다. 연결, 끌림, 동화. 책장을 가만히 쓸어본다. 매끄러운 종이의 질감이 모라가 바라본 노라의 가늘고 긴 손 같기도 하고, 노라가 떠올린 모라의 반듯한 글씨 같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에 스쳐 흘러내릴 뿐이다. 하지만 어떤 스침은 머무르면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만들어 일부가 되기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 두 결핍이 만난 7년.

우리는 서로에게 스밀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알 수 없고, 다만 그림자를 겹칠 뿐이다. 해가 잘 드는 방에 겹쳐진 두 개의 그림자를 떠올리자 외로움이 밀려온다. 사람은 서로 기대며 살 수 밖에 없어서 사람 인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는데, 우리는 안다. 맞닿은 자리가 짓무르며 화상을 입기도 한다는 걸. 사람은 서로 기대는 시늉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어서 사람 인자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조용히 해를 향해 기우는 지하방 창턱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표정은 우리를 사무치게 만든다.

아마도 노라와 모라는 또 오랫동안 만나지 않겠지. 어쩌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을지도 모르고, 죽어서도 모르고 이 생을 건너가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라에게 모라는 그리고 모라에게 노라는 영영 지워지지 않고 종종 떠올리는 시간이어서 실체없이 어긋난 기억으로 서로의 곁에 머물 것이다. 그리움은 아마 그런 것. 어긋난 채로 고정되어 버려서 그 어긋남을 만지면서 계속 궁금해하겠지. 닿지 못할 달력 속 나라의 풍경을 보기 위해 어떤 이는 티켓을 끊고 어떤 이는 무릎을 감싸 안는다. 나는 바라보는 편. 깨뜨린 조각을 공들여 붙이고 비뚤어진 이음매를 손가락으로 쓰는 일에 몰두하는 자. 만질 수 있거나 물어서 답을 얻을 수 있어도 밋밋한 얼굴을 하거나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 돌을 달아 묻어버리는 사람.

노라와 모라가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도시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터미널의 풍경이 그래서 나는 멀미나듯 갑갑하고 그리웠던 거다. 굳이 손바닥에 보내지도 않을 메일 주소를 써달라고 한 노라와, 메일이 와도 답장도 못할 거면서 땀 때문에 지워지니 아무 종이나 달라고 한 모라의 마음이 더워서. 노라의 종묘상과 모라의 지하방이 어느 시간의 거품 속에 흔연히 겹쳐지고 다시 헤어지는 순간을 목도한 것만 같아서.

외롭지만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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