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새벽, 밖으로 나와 흙을 만진다. 습기를 살짝 머금은 흙. 손바닥에 달라붙지만 털어내기 쉬운 흙. 옅은 냄새가 나는 흙. 여름의 흙은 어린아이의 살결과 같다. 아이의 숨은 얕고 덥다. 살에 숨이 뒤엉켜 있다. 그렇게 흙을 만지면 날이 밝고 얼굴을 들면 내가 만지고 있는 흙에 뿌리를 내린 여름의 장미들이 화환같이 내 머리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더운 육체에 뿌리 내린 꽃의 그늘. 축제를 닮은 계절, 여름.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에 머무르면서 이 시간은 나와 닮아서 정말 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은 부드럽고 덥고 여유가 있고 믿음이 있는,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짧은 글들을 읽으며 부럽다고 생각한다. 부러워, 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여름의 풀을 닮은 언어들이. 생기넘치는 색깔을 밀어올리는 언어들이. 유순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들어 여름 장미 같은 그늘을 피우겠지.
나는 의심이 많다. 늙은 손등처럼 구부정하고 어둡다. 하지만 비스듬한 그늘이 있다는 건,비스듬한 빛도 들어온다는 것. 나는 오후 네 시의 기우는 햇빛. 그래서 이 말랑말랑한 언어들이 스미기에는 퍽퍽하지만 멀리 두고 보기에는 아름답다. 여름의 불꽃놀이 축제처럼, 그 군중속으로 파고들 용기는없지만 멀리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우울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 우울함은 그러나 칙칙하진 않았다. 가벼운 우울은 아름답다. 가벼운 우울을 입술에 얹고 바라보는 여름비는 그해의 선물이다. 내 몸의 습기가 솟아올라 다시 이마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그의 언어의 온도는 36.5 도. 정상체온이다. 나는 수족냉증. 살짝 땀이 배어나오는 서늘함. 미열의 온도를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도 있을테다. 제각각의 온도가 어우러져 계절은 이제 겨울. 눈이 내리면 부지런히 걷고 싶다. 눈이 내리는 날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