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사이언스?>

by 별이언니

이과 출신 추리소설가의 과학에세이라는 신박한 조합이지만 사실 시니컬한 작가의 일상 잡학 에세이라는 편이 맞을 듯 하다. 그리고 그런만큼 매력적이다. 사악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소리만 하는 텍스트만큼 지루한 것도 없는 법이다. 살짝 몸을 비틀어 서면 햇빛의 사각지대가 보인다. 거기 머무는 시선, 거기 맴도는 생각의 향이 풍기는 글이 좋다.


다작하는 작가의 글은 잘 훈련되어 있어서 읽는데 망설임이 없다. 가끔 실소하고 가끔 큰소리로 따라 웃다가도 마지막엔 입술에 쓴맛이 돈다. 언더록으로 마시는 위스키 같기도 하고 흡연구역 옆을 지나다 슬쩍 코끝에 날아와 붙는 담배향 같기도 하다. 강하고 독하지는 않은데 고개를 외로 꼬는 삐딱함이 있다. 무작정 희망적이지 않아 현실적이지만 현실의 너머를 기어이 말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그러면서 어깨를 으쓱 올리는 포즈가 인간적이다. 참, 인간적이라니. 이 말은 여러 의미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렇지만 나 역시도 인간은 구제불능이라고 여기긴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다고도 생각하니까. 동족 혐오와 동족 연민이 동시에 좌심방 우심실을 차지하고 고지전을 벌이는, 양가감정의 대참사다.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 십수년이 지난 지금 내어놓지만 전혀 이질감이 없다. 인간사의 복잡함과 일상의 어수선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동차와 마차의 차이일 뿐 폼페이에 매몰된 인간들의 감정이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세상을 꿰뚫어보는 작가의 시선이 예리하기 때문일 수도. 아아, 망했어- 이제 끝이야! 하고 손을 번쩍 들고 돌아서서는 넘어진 아이에게 슬그머니 손을 내미는 작가의 마음에 이끌리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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