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종이상자를 찾은 적이 있다. 지금은 단종된 과자 상자였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한 편지봉투가 가득 들어있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주저앉아 편지를 읽었다.
중학생이 되어 서로 다른 학교로 헤어진 초등학교 동창들이 보낸 편지들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꽤나 심한 왕따를 당했다. 편지 중 몇몇은 사과를 하는 내용이었고, 또 몇몇은 '마치 그런 일은 우리사이에 없었다는 듯' 일상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아마 아무에게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답장을 쓴 기억이 없다.
고등학생 시절, 어디서 얻었을지 모를 주소로 펜팔을 했었나 보다. 성마른 열감이 까칠하게 일어난 편지들이 있다. 역시나 몇 번 편지를 주고받지 않고 내쪽에서 일방적으로 펜팔을 중단했을 거다. 나는 그때 이미 오래 전에 죽어버린 사람들이 쓴 아름다운 텍스트들에 홀려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보내는 신호에 줄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나는 참 멋없는 인간이었다.
이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니 옛 기억이 났다. 영화와도 상관없고 편지와도 상관없는 기억.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 앞 골목이라는 것 외엔 딱히 이어볼 고리도 없는. 국일관 앞 포장마차에서 오돌뼈에 소주를 먹고 취해서 춤을 추며 횡단보도를 건너자 악기거리 구석에 누가 버린 피아노가 있었다. 일행 중 누가 엉터리로 피아노를 치고 나는 치마를 휘날리며 춤을 췄다. 굳이 갖다붙이자면 유치한 청춘영화의 한 장면을 닮았다고 우겨볼 수도 있는 우리의 촌극을 불꺼진 옛극장의 간판과 흘러간 영화의 포스터들이 내려다보고 있었겠지. 땀이 진득하게 달라붙는 여름밤, 장마가 막 끝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땅위로 가라앉던 어느 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기억.
또 이런 기억도 떠오른다. 헬기가 이착륙하느라 먼지가 부옇게 일어나는 군기지 옆을 터덜거리며 지나가던 유월. 색이 바랜 줄장미가 철책을 감고 피어오르고 난 그때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싶었다. 그 마음을 가두고 있느라 입술이 한없이 무겁던 기억.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장미가 피는 계절엔 그 오후를 생각했다. 이미 핏기를 잃어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경하게 바라보느라 나도 세계도 퇴색되던 순간을. 그 차갑고도 열렬한 감각을.
이런 엉뚱한 기억들만 줄줄히 소환됐다. 아마도 그건 이 편지들이 내성적이면서 다정한 소곤거림이었기 때문일 듯.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편지의 본령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남이 쓴 편지를 훔쳐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이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일이고, 영혼의 모서리를 환하게 밝히는 인사이기도 해서다. 집앞에 등을 거는 일은 누군가가 우리를 떠났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고, 내 집에 빈 방이 생겼으니 누구라도 들어와 물과 밥을 청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그러기엔 나는 너무 내향적이고, 몸안으로 부는 바람에만 나부끼니까.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면, 아마도 답장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쓸 것 같다. 도시와 도시를 옮겨다니는 도중같은. 발신인의 주소가 없는 편지를 쓰며 나는 수신인의 주소를 또박또박 쓸 수 있음에 안심할 것이다. 그대가 거기 굳건히 있어준다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구원인지 새삼스럽게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대에게서 기적처럼 편지가 도착하기를 막연히 기다릴 것이다. 내가 기꺼이 그대를 향해 나부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