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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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사는 이도 있지만 우울을 감기처럼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365일 중 360일을 앓는 체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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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우울을 얕다고 하지 말라. 그런 우울을 가볍다고 하지 말라. 미열을 오래 앓는 사람에게 저녁은 쉬이 찾아온다. 피로가 발목을 잡고 끈질기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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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깨금발로 뛰어가는 산보는 모른다. 그렇다고 그이의 생활을 동정하지 말라. 저녁이 깃든 사람은 아름답다. 가장 뜨거운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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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그 사이를 보는 일,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흐르는 한숨을 듣는 일은 저녁이 쉬이 오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섬세함이다. 보거나 듣는 일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일은 오래 몸을 낮춘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기적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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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기고 느린 노래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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