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by 별이언니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에서 작가는 한탄한다. 그의 평생은 부끄러움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나 그건 동주의 고결한 부끄러움과는 달랐다. 서한집에서 만난 다자이 오사무는 나약하고 욕심도 많고 여자도 밝힌다. 무엇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건 - '계속 살아나간다는 피로' 를 견딜 체력이 없다. 그가 계속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요괴처럼 젊음이 그를 떠나지 않거나 세상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없이 마음닿는대로 사랑을 하거나 ... 아니다. 그에겐 계속 쓸 작품이 필요했고, 그 작품은 세상의 찬탄을 불러일으켜 다음 작품으로 의문없이 나아갈 힘이 되어주어야 했다. 어쩌면 그가 계속 죽고 싶었던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노화, 이상적으로 생각할 세계의 실종, 자신이라는 천재를 알아주지 않는 문단에 대한 절망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공포를 넘어서지 못했다. 평생을 따라붙은 외로움을 이겨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성과 동반자살을 꾀했던 것도 혼자 죽기에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겠지. 그는 사랑에 가득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함께 삶을 포기할 궁극적이면서도 고결한 숭배가 필요했다.


흔히 작가를 자기연민과 자기혐오가 양립하는 괴물이라고도 말하곤 한다. 온전히 타인을 위해 작품을 쓰는 작가는 없다. 그건 봉사도 아니고 순교에 가까운 행위니까. 작가처럼 이기적인 생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쓰는 작품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만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훌륭한 작가일수록 기준이 높다. 자기 무덤에 바칠 꽃을 가꿀 땅을 찾느라 전세계를 순례할 수도 있는 종족이 작가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그리고 좌파운동에 투신하느라 신인 시절에는 늘 생활고에 쪼들렸고 진땀을 흘리며 돈을 구걸하는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면 짠한 마음 반 짜증나는 마음 반으로 마음이 시끄럽다. 그 와중에 아쿠타카와상을 향한 집념이라니. 무슨 인정욕구가 이리 강하고 심지어 노골적인가 싶어 당황스럽다가도 그는 솔직한 이구나 싶어 마음이 슬그머니 놓인다. 인정욕구가 없는 예술가가 어디 있어..... 괴롭지 않으려고 내려놓는 것 뿐이지. 하지만 이 천재는 알고 있었나 보다. 그가 강에 떨어져 생을 마감하고 70여년. 그의 작품은 아직도 사랑을 받고 그의 부끄러운 인생은 아직도 어떤 사람의 심사에 여름비처럼 스민다는 것을.


한 작가의 서한집을 읽는 것은 그가 작품으로 정갈하게 다듬어 내놓은 정수가 아닌, 뒤란에 던져놓은 막사발들을 주워 햇빛에 비춰보는 놀이다. 죽은 다자이 오사무가 벌떡 일어나 길길이 날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을지도 모르지. 나를 알아줘, 라고 말했을리도 없지만 사실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을 거야. 나를 이해해줘, 나를 사랑해줘-. 작가에게 독자란 생전에도 사후에도 영원한 베이트리체니까.


올해 앵두기에 다시 이 책을 펴서 읽어볼 참이다. 비내리는 풍경이 많지도 않은데, 나는 빛나며 떨어지다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여름비 속에 고여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사랑하는 다자이 오사무여, 당신의 잠이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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