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우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by 별이언니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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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천사의 이미지는 부서진 몸으로 광장을 지키는 자. 새벽은 간밤이 비우고 간 재떨이. 잿빛이고 젖은 탄내가 자욱하고 지쳐있다. 새벽의 광장은 고요하고 솟아오르는 것은 팔이 부러진 천사 뿐. 젖빛으로 솟아나는 천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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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인의 천사는 좀 더 다정해서, 어린 입술을 벌리고 기도의 언어를 불어넣어준다. 천사에게 말을 배운 아이는 인간의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종종 멍해진다. 백일몽처럼 시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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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의 혈통을 잇고 태어난 아이가 보는 풍경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양파를 까는 천사, 다섯개의 손가락으로 간절히 부여잡는 천사, 쭈글쭈글한 육체로 사라지는 천사 - 굼굼한 냄새가 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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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자궁을 빌려 태어난 아이와 날개를 부러뜨리고 인간의 자궁을 얻은 천사가 기도의 언어로 두손을 맞잡을 때 거기서 피어나는 것은 탁하고 끈적한 눈물이다. 오래 달여 자국만 남은 슬픔이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희미한 모음만 울려퍼지는. 그러나 타서 눌어붙은 눈물은 맑아서 아이와 천사는 천국의 언어로 시를 노래한다. 인간의 새벽으로 흘러간다. 광장이 깨어난다. 눈물이 마른 천사의 수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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