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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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를 닥 다그르르 구르는 빗방울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저녁이다. 봄날의 저녁은 온화하고 아담하다. 작은 그릇에 담긴 물처럼 기울이면 부드러운 무늬가 생긴다. 봄날의 저녁처럼 무늬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간도 있을까. 나는 창을 열고 창틀에 턱을 괸채 먼곳부터 조용히 젖어드는 풍경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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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아, 이름을 부르면 한번도 내 고양이었던 적 없으나 꼭 내 고양이인 것만 같은 사뿐한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지붕 위를 구르는 빗방울도, 그 빗방울이 지나가고 난 뒤 내 고요한 잠 위를 사뿐히 지나갈 고양이도, 시인의 걸음 속에서는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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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시인은 세계가 그에게 시로 말을 걸고 세계에게 시로 대답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저 시로 대화하는 것이 편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나 시를 사는 사람도 있다. 온갖 치열한 수사 없이 그제 내린 커피를 마시듯, 택시에 지갑을 떨어뜨리듯, 우연히 들린 병원에서 병을 발견하듯,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듯 - 그런 아무 날이나 저녁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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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그림자도 풍경도 시간도 모두 시로 빚어져 있어서 이 시를 읽으면 조용히 창을 열고 멀리 눈을 두고 싶다. 저 끝에서부터 비도 다가오고 바람도 불고 지는 꽃들이 흩어져 날아가고 피는 꽃들이 송이송이 몰려오는 - 이 모든, 저녁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