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꿈꾸는 유령 - 방과후 강사 이야기>

by 별이언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학교 비품도 이용하지 못하고, 임신을 했다고 사직서를 써야 하며, 그늘에 주차를 할 수도 없다.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당장의 생계가 위태로운 것도 눈물겹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아프다.



표지는 아주 오래전 내가 어린 시절 다녔던 교실을 떠올리게 한다. 낡고 투박한 나무 책상과 의자, 왁스를 먹여서 아무리 문질러도 광이 나지 않던 마루바닥, 창을 열고 탁탁 맞부딪치면 매캐한 분내가 피어오르던 칠판지우개, 조는 아이의 이마를 딱딱 맞추던 선생님의 분필던지기 신공. 그 시절 우리도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기도 했지만 방과후 시간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난 학교 뒤 개울에서 종종 친구들과 송사리를 잡았다. 서울에서 내려와 서울말을 쓴다고 왕따도 심하게 당했지만 그런 나와 놀아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치마를 걷어올려 동여묶고 구정물을 휘휘 젓고 다니다가 개울에서 나오면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어있곤 했다. 기겁을 하고 울면 남자애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떼어주곤 했다. 거머리에 물린 자리가 부어올라 아프고 잘 잡히지 않는 송사리도 마음을 답답하게 했지만 개울에서 노는 것은 즐거웠다. 고학년이 되면서 악보가 어려워져 작은 손으로는 치기 힘들었던 피아노가 심드렁해진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과후가 수업시간보다 더 바쁘다. 우리 집에서 두블럭정도 걸어가면 학원들이 모여있는 상가가 나오는데 일층 분식집에서는 아예 학원에서 주문을 받아 시간에 맞춰 올려보내는 도시락 장사를 한다.(물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요일에도 학원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제법 늦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나와 밥버거며 시럽이 가득 든 생과일 주스를 먹곤 한다.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앉아 있다.



학원이라도 올 수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낫다. 학원에 올 형편이 안되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혼자다. 학원에 올 형편이 안되면 부모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을 만든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딱딱한 수업이 아닌, 함께 책을 읽고 오카리나를 불고 춤을 추고 드론을 날리는 경험을 한다. 그 반짝거리는 시간을 함께 하는 선생님이 방과후 강사님들이다.



하지만 방과후 강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책을 읽으며 솔직히 놀랐다. 몇몇 사례에 나오는 정규직 교사의 인격을 의심케 하는 일도 허다했다. 아이들과 함께 대회출전을 준비하며 부푼 마음으로 관현악 지휘를 했지만 정작 대회에서는 부장 선생님의 가짜 지휘 뒤에 숨어 아이들의 연주에 맞춰 몰래 지휘를 한 선생님 이야기를 읽다가 가슴이 너무 아파 눈이 뜨거워졌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 하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 만으로 부장 교사에게 불려가서 사직서에 서명하기를 강요당한다거나, 형제도 일가친척도 없는데 홀어머니의 장례식 도중에 나와 휴강 증명원을 써야만 했던 강사님의 이야기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동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였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뭔가 무섭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지만 막상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냥 사람사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사람으로 여겨주지 않는다. 그래서 글쓴이는 방과후 강사들을 '학교복도에서 꿈꾸는 유령'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거기 있는데, 학교에서는 그들을 유령처럼 취급한다. 피와 살이 없는 유령 - 언제든 교체가능한 부속품. 하지만 유령은 꿈을 꾼다. 꿈을 꾸기 때문에 유령은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과 함꼐 즐겁게 수업하고 싶은 꿈, 그렇게 한 수업이라는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수를 받는 꿈, 수입이 없어서 자살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과로사를 하지 않는 꿈, 쌀을 꾸러 다니지 않고 아이가 고기반찬이 나오면 허겁지겁 먹는데 무슨 일이 있냐는 담임교사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꿈 -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은 꿈. 이 책은 그런 꿈에 대한 기록이다. 여러번 책장을 덮고 마음 아파야 했던 꿈들의 기록.



코로나 19로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계의 절벽에 서 있다. 그 와중에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되지 않아 아무런 소득 보전도 받지 못했던 방과 후 강사들은 그야말로 수중에 만원 한장이 없는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방과 후 강사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글쓴이는 오랜 세월 외롭게 전국을 누비며 방과 후 강사들을 만났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얼굴이 알려지면 다음 학기 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사자인 방과 후 강사들조차 몸을 사린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 꿈꾸는 유령들의 목소리를 내어놓는 일, 그래서 그 목소리에 온기와 냄새를 입히는 일, 유령에게 육체를 주는 일. 유령이 자신의 사라지는 손발을 소스라치며 바라보게 하는 일. 바깥에서 그리고 안에서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맞부딪치는 일.



내가 떠나온지 오래된 학교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꿈을 꾸며 자라고 아이들과 함께 꿈을 꾸는 일이 너무나 즐거운 선생님들이 있다. 그 즐거움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없다. 꿈꾸는 모든 일에 그만큼의 빛이 돌려지기를 바라며 - 오늘 저녁, 방과 후 강사님들이 너무 외롭거나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이 바람이 공허하지 않도록 세상이 응답해주기를 간절히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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