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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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제대로 읽지 못한 봄이었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시들이 마음 속에 굴러다녔다. 요가원에 갔다. 수련실을 잠그고 선생님과 건물을 나서는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회원님은 늘 열심히 수련하시는 것 같아요- 아니, 아니에요 - 아냐, 내 눈엔 보여요, 회원님이 정말 마음을 다해 수련하고 있다는 걸요.
그러니? 단속적인 언어들과 이미지들이 굴러다니는 마음을 손마디로 톡톡 두드렸다. 내 힘듦도 너희에겐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 힘듦을 너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아. 아 그래? 시들이 토라진다. 이 연애는 죽을 때까지 해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 시라는 연인은 너무 사랑스러운데 너무 까다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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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색을 머금기 시작한 사과를 닮은 시집을 오래 읽었다. 아, 당신도 죽을 때까지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연애를 하고 있군요. 악전고투인데도 떠날 수가 없군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 읽다가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 시집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을 잘 수 없는데 시도 읽을 수 없고 시를 쓸 수도 없으니 괴로웠다. 이럴 때는 가방을 꾸려서 떠나야 하는데, 아무데도 갈 수 없으니 -.
누가 페이스북에 사과꽃을 찍어 올려두었다. 눈을 감고 사과꽃을 상상했다. 향긋하고 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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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한가요? 봄은 앓으면서 지나가는 계절.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간, 낮에는 적당히 덥고 저녁이 되면 낮의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가볍게 공기가 휘발되는 계절. 가방에서 얇은 옷을 꺼내 입고 낯선 골목을 헤매다가 맥주 한 캔 마시며 밤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 여름이 오면 나의 시들이 조금은 유순한 표정으로 나를 떠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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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사랑을 하죠. 나는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닥에 내려가본 적은 없나 봐요. 늘 바닥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비밀계단을 발견하곤 했죠. 지붕이 없어 하늘이 보이는 이 미로같은 감정의 바닥에 닿을 수 있다면 나는 맨발로 앉아 하늘을 올려다볼께요. 거기엔 너무 지치고 이제서야 만족스러운 내가 비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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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금이 가고 꽃이 피어요. 그 꽃을 따서 꽃잎의 뒷면에 시를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