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아지별에서 네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어떤 색이니?
요가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젠가부터 이 아이를 만나기 시작했어요. 발을 맞춰 나란히 걷는 아이를 며칠째 내려다만 보다가 며칠 전 밤에는 몸을 낮춰 불러보았습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애처롭게 울며 내 무릎에 두발을 올렸어요. 가방 냄새를 맡기도 하고 몸을 늘려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인연인가 싶어 마음이 쓰이고 이내 시큰거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고양이를 책임지고 키울만한 환경이 되지 못해요. 한참을 그렇게 서로 애틋하게 마주보다가 헤어졌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발을 멈추고 나를 보내더군요. 거짓말처럼 다음날부터 이 아이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애타게 이 아이를 찾습니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야옹- 하고 울어준다고 해도 난 함께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날 이후 가방에 계속 넣어다니고 있는 간식이라도 나눠주며 오늘의 시시콜콜한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죠.
그리고 난 소희를 생각해요.
소희가 죽었다. 소희는 메롱이와 별이 다니는 동물병원에서 살았던 강아지다. 유기된 아이를 원장님이 보호하다가 함께 하게 되었다. 소희는 원장님-아빠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아빠는 늘 다른 어른-사람이 안고 오는 다른 강아지 고양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소희를 물론 사랑했지만 어딘가 아프거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해서 잔뜩 약이 오른 다른 강아지 고양이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관심을 베풀었다. 아니, 어쩌면 소희보다 그 친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어딘가 불편한 친구들이었고, 아빠는 그 친구들을 도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희는 약간 비만인 시츄였다. 아빠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병원을 찾는 다른 보호자들에게 갈구했다. 두발로 위태하게 서서 조그만 앞발로 무릎을 두들기며 안아달라 보채는 소희를 들어올리려면 단전에 힘을 줘야 했다. 믹스견으로 키가 있었던 메롱이와 몸무게가 똑같았다. 하지만 힘껏 들어올려 안아주면 소희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소희의 표정이 안스러워서 별이가 진료실에 들어가 있는 시간 동안 두 번 세 번 꼭 안아주었다.
소희는 비만뿐 아니라 신장결석도 앓고 있었다. 수술을 바로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우려되는 부분이 많아 약물로 다스리고 있었지만 돌이 너무 커져서 결국 수술을 해야만 했다. 수술 도중 심장이 한 번 멈췄고 심장마사지를 해서 아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뇌손상을 입었다. 소희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소희는 병원 깊숙한 곳의 입원 케이지 안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났더니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는데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갇혀 서서히 미쳐갔다. 인간 세상의 말로 치매라고 했다. 한동안 소희를 볼 수 없었고, 입원실 저 멀리 입구에서 소희야, 힘내- 라고 한번씩 인사를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이의 간식을 사러 갔는데 저 멀리 입원실 문앞으로 소희가 마중을 나왔다. 시력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반가워서 무릎을 꿇고 소희야- 불렀더니 냄새를 맡으며 힘겹게 한발 한발 걸어와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소희를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이제 조금씩 잘 보이기 시작할 거야- 이제 아픈 것도 많이 좋아질 거야- 언니와 다음에 만날 때는 예전처럼 별이랑 뛰어다니면서 놀자- 소희야 사랑해- 라고 속삭였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소희가 죽었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간질 발작까지 일으키며 힘들게 버티다가. 죽은 소희를 어찌할 수 없어서 일주일을 데리고 계시다가 거제의 볕 잘 드는 곳에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불이 꺼진 동물병원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원장님이 그렁그렁했다. 집으로 돌아와 별이를 안고 방을 서성이며 별아, 소희가 죽었대- 라고 했다. 별은 뭘 아는지 모르는지 어제부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잔다.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희가 불쌍해- 그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가엽지.
소희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다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소희는 이제 겨우 여덟 살 반. 늘 안아달라고 했던 소희. 내 목소리를 듣고 입원실 케이지에서 접수대까지, 잘 보이지도 않는 몸으로 비틀거리며 마중을 나왔던, 통짜 허리라서 이를 어쩌나요- 라고 늘 놀리기만 했던 나를 좋아해주던 소희. 소희가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메롱이를 만나 어린 강아지 시절처럼 행복하게 뛰어놀길. 그곳에선 무릎이 아프지도, 기억이 흐려지지도,눈이 어둡지도 않을테니. 모든 것이 평화로울테니.
소희야, 오늘 네가 뛰어놀다가 올려다본 하늘은 무슨 색깔이니? 언니와 별이가 있는 이곳은 오늘 흐리고 비가 떨어질 것만 같아.
꼭 너처럼 무릎에 애달프게 매달리는 친구를 만났어. 언니는 그 친구를 너처럼 힘껏 안아주지 못했어. 그래도 …
언니의 거짓말이 소희의 마지막 며칠 동안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마약이 되었길 - . 진통제보다 더 강력하고 달콤한 환각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그런 마약이 되었길 -. 언니가 거짓말쟁이로 벌을 받는다고 해도, 소희가 마지막 눈감는 순간 언니를 원망했다고 해도, 소희에게 구름같은 희망이 되었길-
지금은 언니가 그렇게 바라고 있어.
끊어졌다 이어지는 꿈 속에 소희의 굼굼한 몸내를 맡은 것도 같구나. 가끔은 아빠 말고 언니에게도 놀러오고 별이에게도 놀러와주렴. 너랑 메롱이가 신나게 달리는 강아지별의 하늘색을 언니에게 살짝 귀뜸해주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