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마요르가 극본 <맨 끝줄 소년>

by 별이언니


소년은 완벽한 반전을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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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일요일 3시 마지막 공연. 마을버스를 잘못 탔고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낯선 동네의 낯선 아파트 이름의 버스정류장 유람같은 것. 후아나는 말한다. "그 아인 교실 맨 끝줄에 앉아 무엇을 보고 있을까?" 공연이 끝날 무렵,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은 관객석 맨 끝줄로 올라와 쓸쓸하게 무대를 바라본다. 시선의 끝에는 텅 빈 무대, 차갑게 떨어지는 조명과, 책상이 있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빈 책상.


여름 내내 공원에서 저 사람들의 집을 지켜봤어요,


바라본다는 것은 코가 허술한 그물과 같다. 하루종일 물결 위에 앉아있다가 밤이 되어 그물을 걷으면 건지는 것은 달빛과 물방울 뿐. 하지만 달빛과 물방울만 있기에, 그물은 무겁고 아름답다. 이야기가 태어난다.


그러나 그물에 이야기라는 거품의 하중을 실을 수 있는 것은 비겁하고 소심한 고독 뿐, 무겁고 실존적인, 본격적인 쓸쓸함은 기어이 달빛을 걷어내고 물방울을 찢어 그속에 담겨 육지로 끌려나온 육체를 꿈꾸게 한다. 클라우디오는 단순히 외로웠을 수도 있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했을 수도 있다. 정색을 하고 직면해도 답을 내어주지 않는 허수를 마주하듯, 그는 라파의 현관 안으로 들어가 이런 저런 공식을 대입했을 수도 있다. '바라봄 그리고 기록함' 이라는, 얼핏 보면 객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나 클라우디오가 무심코 기술했듯 에스테르에게선 중산층 여성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어떠한 시선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고 관찰의 기술 또한 수사를 한없이 배제한 나열이라 할지라도 의도를 품는다. 마음은 생겨나고 변하고 상하고 - 자란다. 수족냉증에 시달리며 차가운 발가락을 잡고 난로앞에 앉을 수도,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 몽롱한 관자놀이에 빈 총구를 겨눌 수도, 병든 아버지의 저녁을 식탁 위에 차려놓고 캄캄해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서서히 불이 들어오고 웃으며 춤을 추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그림자 극장처럼 상영되는 것을 바라보며 늙어갈 수도 있는 마음-은.


클라우디오의 고독이 조금만 덜 실존적이었어도 그의 '바라봄' 이 굶주린 짐승의 아가리처럼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착찹해졌다. 클라우디오는 재능이 출중한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다. 작가의 재능은 세계의 표면 위를 굴러가는 물방울의 궤적을 손끝에 찍어 피어나는 오월의 꽃덩굴을 그려내는 것이다. 현관을 넘어서는 순간, 라파의 집 벽에 걸린 네 개의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클라우디오의 글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소리없이 오열하는 마음- 그 자체다. 이제 클라우디오는 맨 끝줄에 앉아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며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가가 그가 상상하고 궁금해했던, 완벽해보이지만 사실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타인의 삶 - 그 희고 부드러운 목을 끌어안고 맨발로 춤춘다. 나비처럼. 그러므로 그는 라파 가족에 대해 더이상은 쓸 수 없다. 추방당했으므로. 헤르만과 후아나에 대해서도 쓸 수 없다. 거절당했으므로. 다음에 그가 두드릴 현관은 어디일까. 클라우디오가 앉아있던 맨 끝줄은 이제 없다. 그가 돌아올 빈 책상은 없다.


나는 시선을 돌려 다시 무대를 바라본다. 조명이 꺼지고 책상 위 스탠드가 하나씩 꺼지며 물크덩한 어둠 속으로 책상과 의자가 사라진다. 맨 끝줄이 사라진다. 클라우디오와 나는 바라본다. 저 앞에 놓인 막막하고 부드러운 암흑을. 우리의 고독이 만들어낸 저 무시무시하고 아름다운 마음 - 육체를. 그녀에게서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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