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리즈

by 별이언니

어제는 아보카도간장연어밥이라는 미끼에 낚여 오후 한나절 봉투붙이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날은 덥고 열어둔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미적지근, 대화는 겉돌고 손가락은 풀이 묻어 끈적거렸죠. 쉴새없이 말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말이 물위를 스치듯 지나갈 때가 있잖아요. 아무런 흔적도 없는 말들이 입술에서 떨어지자마자 사라져버렸죠.


무료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켜자 마침 내가 찍어준 사진으로 프로필을 바꾼 친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볼 때마다 예쁘다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고나서 또 감탄하는 친구에요. 핸드폰을 의기양양하게 내밀면서 내가 찍어준 사진이에요, Y는 정말 예쁘지 않아요? 했더니 웃음섞인 대답이 돌아왔어요. 넌 정말 Y를 사랑하는 거 같아. 너희 나이 때가 제일 예쁠 때야. 너도 네가 예쁜 시절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아, 아뇨- 전 거울볼 때마다 거울을 부수고 싶은데요, 하고 화들짝 부정하고 나니 문득 서글퍼졌어요. 침울하게 덧붙였죠. 선생님, 제가 예뻤던 시절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누구나 리즈 시절이 있을 거에요. 한시절 아름답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모두의 마음에 나비 모양, 학 모양, 별 모양, 비행기 모양으로 접어서 간직해둔 어느 시절의 한 토막. 지나가는 구름에 비춰보아도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질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던 어느 시절이.


나는 활짝 피기 전 봉우리진 작약이 가장 예뻐요. 어느 누군가는 활짝 핀 작약이 예쁘다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어느 외로운 날엔 꽃진 자리에 머물러 꽃의 환상통을 앓고 있는 마른 꽃받침에 마음을 내어줄지도 몰라요.


시절에도 리즈가 있나봐요. 엄마는 아직도 주무시다가 화들짝 놀라 깨신다고 해요. 내가 엄마 - 하고 부르는 것만 같아서. 어린아이인 내가 조금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엄마- 하고 부르는 것만 같아서. 그 시절 자주 아프고 눈만 커다랗던 내 딸은 어디에 갔니, 엄마는 다정하게 속삭이시고는 내 이마를 쓸어주시죠. 여기 있네 -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절마다 저마다의 리즈가 있어서 서로 다른 벽을 바라보며 엇갈리는 이름을 부르나 봐요. 목소리는 시공간의 틈을 헤매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어느 시절의 리즈를 함께 지나간다면, 그것이 우리 서로에게 딱 맞는 최고의 시절이 아닐지라도 -


여기 있네 - 하고 이마를 쓸어줄지도 몰라요, 다정하게.


오늘이 나와 당신의 리즈 시절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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