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자기 작품 중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고 했던 <막다른 골목의 추억>. 전 영화로 먼저 보았습니다.
삶의 일부가 부서지는 경험을 한 여자는 울지도 않아요. 덤덤하게 가방을 꾸리고 거리를 걷습니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서 커다랗고 서늘한 방을 만납니다. 그곳의 이름은 <end point>.
여자는 그 커다랗고 서늘한 방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만 잡니다. 해가 뜨고 다시 지고 해가 또 떠올라도 여자의 잠은 이어져요. 그곳의 베개에 머리를 눕힌 순간, 여자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전시하며 목놓아 울거나 상처를 준 사람의 뺨이라도 후려갈길만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곳에 닿지 못했을 거에요. 슬픔을 맞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니까요. 슬픔을 견디고 이윽고 건너가는 방법도 다 그렇듯이.
그곳에서 만난 친구는 여자의 잠을 묵인합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요. 하지만 사람은 먹어야 사니까 꾸준히 먹을 것을 담은 쟁반을 올려보내지요. 그렇게 낯선 땅에서 만난 친구는 여자를 천천히 잠 밖의 세상으로 다시 데려옵니다.
여자의 잠을 방해하지 않은 것처럼 친구는 여자가 상처 밖으로 나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때때로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자전거를 타거나 간판에 글씨를 써달라고 청하기도 하죠.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해요. 여자는 천천히 눈을 크게 더 크게 뜹니다. 입술을 열고 말을 하고 미소짓기도 해요.
우리는 상처 안에 있을 땐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상처 밖의 세상은 찬란하고 아름답죠. 이마에 천천히 떨어지는 햇살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꽃잎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나란히 앉아 비장의 레시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는 일처럼요.
주변 사람들은 크게 감흥을 받지 못했던 이 영화를 나는 오래오래 다시 떠올리고는 해요. 여자주인공을 연기한 최수영씨의 서늘하고 단정한 표정이 기억에 남기도 했고요. 그녀가 앉아 멍하니 내다보던 바깥의 눈부신 풍경과 대조되는 다다미방의 그늘도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방식을 그 영화를 보면서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늘은 또 어떤 위로를 받았어요. 아주 짧지만 다정하고 단단한 위로라서 노트북 키보드 위로 그만 눈물이 떨어졌어요.
사람을 어루만지는 위로는 너무 소중해 가만히 간직하고 싶어져요.